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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azing World of Gumball/팬픽

The Loop 10 놀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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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해당 팬픽은 2011년 12월 (검볼 1시즌 이 한창 방영중일때부터 쓰여져 왔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검볼의 설정과 다를 수도 있으니, 시즌 1 분위기로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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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가놈]


본 역주는 이 픽션과 검볼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일절 갖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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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op

Written by Mr. Page


1st Translated to Korean by Mub

2nd Translated to Korean by 펭가놈


10. 놀이 시간


원본 : https://www.fanfiction.net/s/7647419/10/The-Loop



검볼은 살면서 최악의 날을 겪고 있고, 이건 그걸로 끝나지 않네요. 사실, 절대 끝나지 않아요! 검볼은 타임 루프에 갇혔고, 내일이 오기를 바란다면, 뭐가 문제인지 맨 밑바닥까지 샅샅히 뒤져봐야하죠.


독서 연령: Fiction K+ (만 9세 이상)


장르: 판타지/유머



작가의 말:


 또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난 두달동안 학억입 꽤 바빴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일고 리뷰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글을 즐겁게 읽어주시는게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저는 기쁘게 다음 이야기들을 상상할겁니다.


 면책 조항: 저는 'The Amaing World of Gumball"에 나오는 캐릭터, 장소, 이야기에 나타날수 있는 다른 참조를 포함하여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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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알람소리가 들려오자 검볼은 침대에서 잽싸게 일어났다. 그가 허둥지둥 옷을 입으려 하는 동안, 창문 너머로 흘러들어온 6시 20분의 따스한 햇살은 어제의 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그가 스웨터에 머리를 집어넣고 바지 단추를 잠그자, 오래지 않아 아나이스만이 낼 수 있는 부드러운 발걸음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고, 눈을 부비는 작은 분홍색 토끼와 함께 방문이 살포시 열렸다.


  “좋은 아침, 검- 으악!”


  자기 어깨가 잽싸게 잡아 당겨지는 걸 느끼자 아나이스가 눈을 번쩍 떴다. 도달한 곳은 오빠의 코앞에서 불과 1인치 앞이었다.


  “아나이스! 오늘 월요일 맞지?” 검볼이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물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활기차 보이는 오빠를 본 그녀는 꽤나 놀랐다. 아나이스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지...?”


  검볼의 즐거움이 폭죽처럼 팡팡 터져 나왔다. 그는 당황해 하는 동생을 들어 올려 꼭 껴안아 주었다.


  “아싸!!! 다시 시작됐어! 어제가 아니야! 오늘이라고!”


  그녀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검볼은 행복하게 빙글빙글 돌면서 다윈의 어항으로 향했다. 그 모습은 마치 흥에 겨워 정신줄을 놓은 발레리나 같았다.


  다윈이 늘 그랬듯 미소 띤 얼굴로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검볼. 오늘은 좀 어- 우-우와앗! 야!!!”


  검볼이 서랍 위의 어항을 휙 낚아채어 어항과 그 속의 다윈을 공중으로 즐겁게 던져 올렸다. 어항이 떨어지면서 안에 들어있던 물이 절반가량 넘쳐 카펫을 적셨고 아나이스의 발에도 살짝 튀었다. 아나이스는 더럽다는 얼굴로 몸을 움찔했다.


  “으윽!!! 물고기 담겼던 물이잖아!”


  검볼은 어항이 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받아내고는 자기 얼굴을 다윈 얼굴의 2인치 앞까지 들이밀었다. “야, 다윈! ‘월요일’이야!” 그의 목소리는 웃음으로 떨렸고, 과장되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충격을 받은 다윈은 형의 행동에 말문이 막혀 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마침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어...그러니까...오늘이 펩 페스트 날이라고?”


  다윈은 검볼이 달리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할 지 몰랐지만 얼추 맞는 듯 했다. 형의 얼굴이 밝아져 왔고, 더더욱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맞아! 맞아, 바로 그거야!”


  검볼은 다윈과 그의 어항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킥킥거리는 소리와 간혹 푸흡거리는 웃음소리가 섞인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그의 형제들은 햇살이 비추는 방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 둘은 방금 전까지 누구랑 얘기를 한 건지 벙찐 얼굴로 눈과 입이 쩍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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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볼은 즉흥적으로 짜낸 콧노래를 부르면서 복도를 들썩거리며 활보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없었다. 어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접시와 아나이스, 다윈의 성적, 팝 퀴즈, 케이크, 다른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 또 다른 뭔가가 닥쳐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영원히 반복되는 월요일 속에서 그는 두 팔을 벌려 원하는 것들을 챙기고, 앞길을 가로막는 짜증나는 일들은 그냥 휙 털어내 버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고통과 좌절,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나 일들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지언정 어떤 문제도, 걱정도 없었다! 내일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결과는 어제 신은 양말처럼 구석으로 휙 던져질 테니까.


  누가 알겠는가, 이 루프가 사실 슬라이스 치즈처럼 현대 문명 최고의 발견으로 밝혀지게 될 지!*

  *(역주: 원문은 “the best thing since sliced cheese(보통은 bread).”로, 인물이나 사물을 치켜세울 때 사용한다고 하네요.)


  치즈 생각을 하자니....검볼이 깡충거리는 발걸음과 콧노래를 멈추었다. 공복감이 밀려오며 뱃속에서 먹을 걸 달라고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밥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좋겠어.’ 그는 생각했다. ‘근데 뭘 먹지?’


  지난 다섯 번의 반복 속에서 데이지 후레이크를 먹었던 검볼은 이제 질린 미각세포들을 만족시켜 줄 새로운 걸 찾기 시작했다. 토스트도 괜찮을 듯했지만, 버터와 잼을 발라도 그 곡물 씹는 식감은 여전히 그의 가족들이 늘 먹던 월요일 아침의 시리얼의 그것과 흡사할 것이었다.


  안 돼...멋진 하루로 계획된 오늘은 그 시작도 똑같이 멋져야 했다. 보송보송한 푸른빛의 손가락으로 잠시 턱을 매만지고 있던 검볼의 뇌리에 뭔가가 스쳤다. 지난주에 들었던 뭔가에 대한 짧은 기억이 흐릿한 형체 속에서 튀어나왔고, 그 정도면 그에게 아이디어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거기까지 어떻게 제 시간에 간담?’


  그의 귀가 쫑긋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질질 끄는 발걸음 소리를 듣자 검볼은 그 답을 찾아내었다. 그는 복도를 걸어가 문틈 너머를 엿보았다. 그의 아버지가 방의 거울 앞에 서서 빛나는 새 넥타이를 셔츠의 칼라에 조심스럽게 매고 있었다.


  그의 뇌리 속에 생성된 아이디어가 반짝였다. ‘만약 아빠가 내 입을 씻긴다는 이유로 학교에 빠르게 달려올 수 있으시다면 말이야.’ 그는 생각했다. ‘만약 음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과연 얼마나 빠르게 달리실 수 있을 지 궁금한데....’ 검볼은 그 상황을 상상해 보자 입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헬멧을 써야 될지도 모르겠는걸.’


  생각을 정리한 그는 마침 아버지가 넥타이를 매고 칼라를 접어 넣은 참에 방으로 발을 들였다. 검볼은 목을 가다듬었다.


  “좋은 아침이구나, 아들.” 리처드가 몸을 돌렸다. “잘 잤니?”


  “네, 나름 푹 잤어요.” 검볼이 말했다. “넥타이 멋진데요, 아빠.”


  “고마워. 완전 새 거란다.”


  “그런 거 같더라구요, 완전 광 나 보여서요. 그런데, 아빠, 아침으로 뭐 드시려고 했어요?”


  “음, 데이지 후레이크랑 토스트가 평소 아침 식사였던 거 같은데.”


  “네, 그렇죠. 그런데 쪼오끔 다른 걸 드셔 보시는 건 어때요?”


  리처드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분명히 관심 있어 보였다. “생각해 둔 게 있니?”


  검볼은 아버지를 향해 걸어가 눈높이를 맞춰 달라고 손짓했다. 리처드가 그의 높이에 맞춰 주자, 검볼이 아버지의 커다란 분홍색 귀에 속삭였다.


  리처드의 눈이 감탄에 휘둥그레졌다. “진짜로?”


  “네.”


  “늘 그래왔는데 우린 지금까지 몰랐었다는 말이지?”


  검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좋아! 좋았어!” 흥분에 겨운 리처드가 펄쩍펄쩍 뛰어서 방이 말 그대로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곧 갑작스러운 생각에 그는 멈추었다. “잠깐만, 검볼.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니?”


  검볼이 손사래를 치며 비웃었다. “아니, 아빠. 늘 남는 음식이 생기잖아요. 거기다가, 음식 좀 없어진 것뿐이잖아요? 애초에,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도록 하는 게 선생님들 일이잖아요. 그리고 학교생활을 잘 하려면 보통 아침을 잘 챙겨 먹어야 하죠. 전 분명 그분들도 이 중요한 요소를 앗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들 알듯 선생님들께서는 나눔을 장려하시니까, 음식 좀 나눠 먹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쁘겠어요?”


  검볼은 자기가 예쁘게 포장한 그 말들이 얼마나 황당한 내용들인지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의 아버지라면 얘기가 달랐다. 게다가 음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는 스테이크가 가득한 상자로 강아지를 꾀어내는 일과도 같았다.


  전반적으로 그의 아버지는 완전히 넘어간 듯 했지만, 그는 아직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었다. “그러면 엄마랑 다윈, 그리고 아나이스는?”


  “함께 오도록 부를 거예요. 아무튼,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행복한 법이니까요, 그죠?”


  리처드가 빙긋 웃었다. “좋아! 알겠어, 음식이 식기 전에 출발하자!”


  몇 초 뒤에 둘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문 밖으로 나가자 니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볼! 할 말이 있다!”


  어머니가 소리칠 때마다 느꼈던 긴장감은 전혀 없는 목소리로 검볼이 외쳤다. “나중에요, 엄마! 저랑 아빠는 학교에 밥 먹으러 갈 거거든요! 같이 가고 싶으시면 따라오셔도 돼요!”


  “아니, 안 돼! ‘당장’ 이리로 돌아와서-”


  검볼은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고는 커다란 귀를 붙잡고 소리쳤다. “아빠, 튀어요!”


  그러자, 단 1초 만에 리처드는 토끼의 피에 흐르는 힘인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학교를 향해 길을 내달렸다. 집들, 차들, 20mph*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흐릿하게 스쳐가는 지금, 검볼이 분명히 보았던 것은 어머니의 시야 밖으로 도망치기 전에 얼핏 보았던 그녀의 당황한 얼굴뿐이었다.

  *(역주: 약 32.2km/h)


  그 와중에 니콜은 분홍색 샤워가운을 걸친 채로 문 앞에 서서 부서진 중국 접시를 매섭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는 거실을 향해 휙 돌아서서 아나이스와 다윈 옆을 지나갔다. 그 둘은 하루의 첫 몇 분 동안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건지 심히 혼란스러웠다.


  그들의 어머니가 계단을 올라 방으로 향하며 명령했다. “5분 내로 옷 입고 차에 타! 검볼은 이렇게 쉽게 빠져나가진 못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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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은 엘모어 중학교 앞에 다다르자 브레이크를 콱 밟았다. 주차장은 브라운 교장의 차와 좀처럼 보기 어려운 다른 교직원 몇 명의 차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이 푸르른 하늘이 멋진 날에 화가 끓어오른 니콜은 주먹을 움켜쥐고 가족들의 차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아직 아침을 먹는다던가, 씻지도, 양치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그녀는 틀림없이 회사에 늦을 것이었다. “아오, 얘는 진짜 사고뭉치라니까!!!”


  미식축구 팀에 비견될 정도의 힘으로 문을 열어젖힌 니콜은 안으로 발걸음을 쿵쿵 내딛었다. 다윈과 아나이스가 멋쩍게 그 뒤를 따랐다.


  “검볼이 엄마의 접시를 깬 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는데.” 차에서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준 아나이스가 다윈에게 말했다.


  “나도 몰랐어.” 그가 답했다. “나도 검볼이 페니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학교에 일찍 가고 싶어 할 줄이야.”


  “아하!” 니콜이 소리쳤다. “딱 걸렸어!”


  그녀는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당당히 걸어가 교직원 휴게실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녀가 황동 손잡이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도망칠 곳은 없다고!” 그러고 나서 그녀는 문을 홱 열어젖혔다.


  그녀의 열 받은 얼굴은 단숨에 식어 당황스러움으로 변했다.


  “아, 어서 와, 여보!” 리처드가 입에 도넛을 한가득 채워 넣은 채로 말했다. “얘들 데리고 와서 아침 좀 먹어.”


  안으로 들어온 니콜, 다윈과 아나이스는 검볼과 리처드를 쳐다보았다. 둘은 음식들로 가득한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반쯤 빈 도넛 상자와 스콘 한 봉지와 머핀이 담긴 접시, 시리얼 두 박스와 토스트용 페이스트리가* 있었고, 다양한 과일들로 가득한 그릇 옆에는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커피포트와 달콤한 향기가 나는 오렌지 주스가 반짝이는 저그에 담겨 있었다.

  *(역주: 원문은 ‘toaster pastries’로,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물건이기에 궁금한 독자는 역주의 말 참조)


저그 (jug)



  “리처드.” 니콜이 당황한 채로 말했다. “이게 다 뭐예요?”


  커다란 토끼가 크랜베리가 섞인 달콤한 건포도 시리얼을 한 숟갈 가득 입에 집어넣었다. 그는 우물거리며 식탁 맞은편의 검볼을 숟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렌지 주스를 꿀꺽 삼킨 검볼이 대답했다.


  “엘모어 중학교의 월요일 아침식사 모임이에요. 지난주에 시미언 선생님께서 브라운 교장선생님한테 말했던 걸 들었거든요. 선생님께서는 또 한 번의 끔찍한 한 주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심심한 위로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건 선생님들한테만 국한된 거잖니.” 다시 화가 끓기 시작한 니콜이 말했다. “왜 너희 두 사람이 그걸 먹고 있는 거야?”


  “음, 브라운 교장선생님께서는 수영장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계시고, 스몰 선생님께서는 지금 엄청난 양의 커피콩을 세고 계시고,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아직 안 오신 걸로 봤을 때, 선생님들께서 여기 오시기 전에 아침밥을 좀 챙기면 좋을 것 같아서요. 데이지 후레이크도 좀 질리기 시작해서 뭔가 새로운 게 먹고 싶었어요.


  “데이지 후레이크가 질린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 4일 동안 먹은 적 없었잖아.”


  “‘제가’ 있었던 곳에서는 먹었었거든요.” 검볼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검볼은 식탁 위에 다리를 얹으며 달콤하고 윤기가 흐르는 브래번*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물고는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요, 다들 먹을 만큼 충분해요.”

  *(역주: 사과 품종의 하나)


  “안 돼, 검볼.” 니콜이 아들의 손에서 사과를 채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넌 내 골동품 중국 접시들 가운데 하나가 왜 깨졌는지 설명해 줘야 하고, 그러고 나서 브라운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께 음식을 뺏어먹은 걸 사과해야-”


  그녀는 갑자기 검볼이 두 손가락으로 작은 종이 한 장을 집어들자 말하던 것을 멈추었다.


  짜증이 난 니콜이 물었다. “그게 뭔데?”


  “그냥 한번 읽어 보세요.” 검볼이 사과를 도로 가져가며 덤덤하게 말했다.


  종이를 채간 니콜이 그것을 펼치자 익숙한 손글씨로 적힌 글귀가 있었다.


  내 스콘에서 손 치워!


  -루시 시미언


  니콜의 눈길이 식탁 위의 하얀 종이백으로 향했다. 스콘은 모양이 잘 잡혀 있었고, 블루베리, 크랜베리, 사과가 들어가 푸른빛과 붉은 빛, 노란 빛깔이 섞여 있었다. 갈색의 도우에서 풍겨져 나오는 달콤한 향기는 니콜의 미각세포뿐만 아니라 늙은 개코원숭이에 대한 분노로 타오르는 그녀의 영원한 불길까지 자극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종이를 내려놓고는 봉지를 낚아채어 사과 스콘을 몽땅 입에 털어 넣고는 즐겁게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스콘을 삼킨 니콜은 수염에 붙은 부스러기들을 털어내고는 손을 뻗었다. “리처드, 자기, 커피 좀 줄래요?”


  “그럼요, 여보.” 리처드가 말했다. 그리고는 커피포트와 스티로폼 컵을 집어 들었다. 니콜은 포트만을 챙겼고 가족들은 놀란 얼굴로 그녀가 포트 째로 들이키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녀는 크게 여섯 번을 들이켜 커피의 절반을 먹어치웠다. 포트를 내려놓은 그녀는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의식했다.


  “왜? 이건 바닐라 로스트라고. 레인보우 팩토리에서는 이런 건 취급 안 한단 말이야.”


  그녀가 다른 스콘을 먹기 시작하자 나머지 가족들도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리처드는 남은 시리얼을 후루룩 입에 털어 넣었다. 다윈과 아나이스는 이 이상한 상황에 어깨를 으쓱했지만 같이 먹기로 했다. 둘은 머핀과 과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검볼은 이 모든 상황에 히죽거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사과를 또 한 입 베어 물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아침만큼 좋은 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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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슨 가족은 음식들의 절반이 사라졌을 무렵 교직원 휴게실을 떠났다. 리처드는 남은 도넛이 든 상자를 들고 집으로 향해 보도를 걸어갔다. 다윈과 아나이스는 그들의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검볼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학교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둘은 검볼에게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하고는 그녀의 말에 따랐다.


  하지만 검볼은 교직원 휴게실에 있을 때처럼 능글맞아 보였다. 그를 쳐다본 사람들은 그가 반쯤 잠들어 있는 줄 알 정도였다.


  “자, 검볼.” 니콜이 엄한 모습을 되찾으며 말했다.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건, 그 개코원숭이가 화낼 모습이 눈에 얼마나 선하건 간에 이 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학교에 오게 만들었던 원인인 접시를 꺼내들었다. “이게 왜 깨진 채로 발견됐는지 말해-”


  뜻밖에도, 검볼이 그녀의 손에서 접시를 낚아채었고, 그녀는 질책하던 것을 멈추었다.


  검볼은 접시를 자신의 머리에다 내리쳤다.


  “오파!” 그는 TV에서 보았던 그리스 문화 다큐멘터리를 떠올리며 힘차게 소리쳤다. 사실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그 구절과 행동뿐이었지만 말이다.


  니콜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검은 콘크리트 위의 부서진 파편들을 내려다보던 니콜은 조각들을 가리키며 살짝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내...” 그녀는 아들의 평온하고 속 편해 보이는 얼굴을 다시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숨이 가빠져 왔다.


  “음, 회사에서 좋은 하루 되세요, 엄마.” 그리고 그는 충격 받은 얼굴의 어머니를 주차장에 남겨둔 채로 돌아서 자리를 떴다.


  검볼은 마치 백만 달러 상속자라도 된 양 학교 복도를 활보했다. 그는 스스로가 규칙과 걱정거리의 손아귀 밖에서 무적의 존재,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는 엄마 앞에서 말썽을 부렸지만 어떠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문제에 직면하게 될 지라도, 다음 날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하루의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즐길 거리였고, 그는 그저 이를 만끽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건 그 나름대로 백만 달러보다 값진 것이었다.


  검볼이 시미언 선생님의 교실에 들어와 앉았을 때 자리에 있었던 건 다윈뿐이었다. 시계가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아직 7시 20분밖에 되지 않았었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는 30분이 조금 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뭘 하셨어?” 답을 듣기 두려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다윈이 물었다. “왜 나한테 어젯밤에 엄마의 접시를 깼다고 말하지 않았던 거야? 아나이스가 그거 때문에 많이 짜증나 보였었다고.”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셨어.” 검볼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나는 했지만서도.”


  방금 검볼이 엄마의 접시 건이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한 걸 들은 다윈은 떡 벌어져 책상을 치려는 아래턱을 어렵사리 붙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셨다고?”


  “응.”


  “근데 그거 좀 아프지 않았어?”


  “근데 뭐, 재밌잖아. 난 진짜로...그게...” 그리고 검볼은 접시를 깬 부분에 손을 갖다 대었다. 이제야 그저 잠깐이었지만 예리한 고통이 그의 두개골을 갈라왔다. “그래, 조금 아프긴 하네. 그래도 야, 너도 그때 엄마 얼굴을 봤어야 했어. 난 엄마가 그렇게 기겁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니까.”


  검볼이 킥킥거리며 다윈을 쳐다보았다. 다윈은 좀처럼 그의 말을 종잡기가 어려웠다. “별로 재밌는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검볼.”


  “아아, 기운 내라구. 오늘은 분명 멋진 날이 될 테니까.”


  ‘아님, 적어도, 내가 진짜 재밌게 끝나도록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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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들이 도착하고 복도가 발소리와 목소리로 채워지자, 검볼과 다윈의 반 친구들이 하나둘씩 교실 문으로 들어왔다. 대부분 학교에 일찍 온 그들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캐리가 둘 옆을 지나가며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손짓을 건넸다. 페니는 교실에 발을 들이자, 자리에 앉은 검볼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검볼! 버스에서 안 보이길래 어디 아픈 줄 알았어.”


  “아냐.” 검볼이 씨익 웃었다. “그냥 평범한 나날들에 살짝 변화를 줘봤달까.”


  “응?”


  다윈이 대답했다. “검볼이 학교에 아침 먹으려고 일찍 왔어.”


  “진짜로? 학교에서 아침을 주는 줄은 몰랐는데.”


  “안 줘. 근데 선생님들한테는 주지.” 검볼이 빈 스콘 봉지를 발견한 시미언 선생님의 얼굴을 상상해보며 킥킥거렸다.


  “그래...” 페니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볼 수 있어서 좋다, 검볼. 벌써부터 펩 페스트가 기대되는걸? 그때 봐.”


  주변 아이들은 검볼이 늘 페니 앞에서 그래왔듯 수줍게 손짓을 건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대신 키스를 날리자 당황한 눈치였다.


  깜짝 놀란 페니의 갈색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라 할지도 모른 채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감추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윈이 놀란 얼굴로 형을 쳐다보았다. “와.... 오늘 텐션이 좀 높네, 검볼.”


  “만사가 잘 풀릴 땐 안 높아질래야 안 높아질 수가 없지.” 그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어떤 일들은 항상 틀어지기도 한다고, 검볼.” 다윈은 형이 기분 좋을 때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의 모습에서 경솔함을 보았다. 그는 지난주에 검볼이 그러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다. 그와 다른 이들의 짜증을 불러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검볼은 걱정하는 여지조차 없어 보였다. “다윈,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뿐이야. 지금 여기가 바로 내가 있는 곳이야, 그리고 난 마주하는 것들이 뭐든 간에 그걸 즐길 거야.”


  “엄마의 접시랑 시미언 선생님의 스콘은 어쩌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란 건 너도 잘 알잖아.”


  “아닐지도 모르지, 근데 말이야.” 검볼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


  다윈은 짜증난 듯 했다. “아닐걸, 검볼.”


  그리고 몇 분 정도가 지나자 매우 흥분한 시미언 선생님이 문을 벌컥 열었다.


  “말했지.” 다윈이 말했다.


  “다들 자리에 앉고 입 다물어!” 시미언 선생님이 소리쳤다. 얼굴이 평소보다 더 화가 난 채로 구겨져 있었다. 그녀의 주름진 손이 성적표를 콱 움켜쥐고 있어 종이 밖으로 손가락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오직 검볼만이 그녀의 모습에 움찔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그 스콘을 진짜로 드시고 싶으셨나 보네. 어쩌면 다음번에는 엄마한테 그 쪽지를 보여드리지 말아야겠어....’


  몇 분이 흐르자 브라운 교장이 인터콤을 통해 하루의 일정을 안내했다. 매 어절이 이전과 동일했다. 시미언 선생님의 모습은 연인의 목소리에도 전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성적표를 돌리느라 나이젤에게 한눈을 팔 여유가 없었다. 또 검볼이 조용히 브라운 교장의 말 하나하나를 입모양으로 따라하는 것도.


  오전 수업이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정도가 흐르자 시미언 선생님은 화났던 기분이 풀렸고 이제는 모두-불행하게-만들기 모드에 들어갔다. 그녀가 팝 퀴즈 시간을 선언한 것이었다.


  “워터슨!” 그녀가 옅은 이빨들을 반짝이며 히죽였다. “반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나와서 비활성 기체 여섯 가지를 외워 보라구요?”


  시미언 선생님의 얼굴에서 악랄한 미소가 사라졌다. “뭐라고? 하지만- 어떻게-”


  “당연히 그래야죠!” 검볼은 시미언 선생님이 싫어하던 그 특유의 싱글거리는 미소를 일부러 지어 보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눈을 감고, 뒷짐을 진 다음 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섯 개의 비활성 기체는 헬륨, 네온, 아르곤, 제논, 라돈, 그리고 크립톤이에요. 거기다-” 검볼이 눈을 뜨고는 손가락을 세웠다. “시미언 선생님께서 다음으로 하실 질문은 지리학에 관한 주제로, 북미의 4대 산맥이 무엇인가예요. 그리고 그 답은 로키 산맥, 애팔래치아 산맥, 캐스케이드 산맥 그리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이죠.”


  시미언 선생님은 마치 누군가의 머리가 녹아내리는 모습이라도 본 듯이 교탁 뒤 의자에 주저앉았다.


  검볼은 말을 이어나갔다. “다음으로 선생님께서 시키실 쓸데없는 상식퀴즈는 영국 작가들이에요. 세 명의 브론테 자매들의 이름은 샬롯, 에밀리, 그리고 앤이에요. 그리고 그 작가들의 필명을 물어보신다면 각각 커러, 엘리스 그리고 액튼 벨이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최단 임기를 기록한 미국의 대통령은 윌리엄 해리슨...”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미언 선생님께서는 변칙적인 질문을 던지시죠. 시미언 선생님의 실제 나이를 유추해 내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요. 선생님께서는 출생신고서나 종이가 발명되기도 한참 전에 태어나셨거든요. 게다가 산 사람에게 탄소 연대측정법을 사용하는 건 불법이기도 하구요.”


  반 전체가 입이 떡 벌어진 채 쳐다보았다. 그저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진 줄 알았던 검볼이 정답들을 모두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시미언 선생님이 언급하려던 소재들을 줄줄이 읊어내었기 때문이다. 석상처럼 굳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보면 틀림없는 일이었다.


  검볼이 자신의 모습에 킥킥거렸다. “근데 생각해 보면 지난 주말에 아무 것도 안 읽고 왔었네요.” 자기 자리로 돌아가던 그는 잠시 멈추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요, 아무것도 안 읽었어요.”


  검볼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자, 믿기 어려운 나머지 3분 동안 숨을 멈추고 있던 시미언 선생님은 결국 의자에서 쓰러져 크나큰 당혹감에 뭔가를 중얼거리며 반쯤 몽롱한 상태로 바닥에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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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을 보고서에 집어넣는 걸 까먹어 버리다니 믿을 수가 없어!” 다윈이 검볼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소리쳤다. “내 이름을 적어두는 것까지 잊어버린 거야?” 검볼의 표정은 다윈과 함께 날씨에 감탄하고 있었던 것처럼 태평했다. 한때는 하루를 우울하게 만들고 그의 기분을 죄책감에 짓눌리게 했던 것이 이제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검볼은 진심으로 다윈을 사랑해 주고 그의 성적을 신경 쓰고 있었지만, 다섯 번의 반복 이후에는 과학 보고서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내가 너였다면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려 들지 않았을 거야, 친구.”


  “우리 그거 한다고 몇 주를 꼬박 보냈었잖아!”


  “그리고 그냥 F 하나일 뿐이잖아. 네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다른 좋은 성적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너의 이 작은 실수는 덮여 버리게 될 거야.”


  “‘내’ 실수라고?” 그가 소리쳤다. “네가 지난 금요일에 내 이름을 넣겠다고-”


  “날 믿어봐.” 검볼이 태연하게 말했다. “내일이면 모두 잊어버릴 거니까.” ‘그거랑 다른 자잘한 것들도.’


  검볼은 동생의 오렌지 빛 볼을 쓰다듬으며 식당에 들어섰다. 짜증난 다윈이 이를 갈며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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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스몰 선생님.” 검볼이 식판을 들고 점심 줄에서 나오며 말했다.


  “안녕, 검볼.” 스몰 선생님이 이동식 탁자에서 대답했다. “커피콩 개수를 맞춰 보겠니?”


  “그럼요.” 그가 히죽거리며 장난삼아 말했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냥 이 병 속에 든 콩의 개수를 실제와 가장 가깝게 추측해 내면 된단다.” 그가 펜으로 플라스틱 뚜껑을 두드리며 말했다. “만약에 개수를 넘어가지 않고 가장 가까운 답을 내면, 펩 페스트에서 상품을 받아갈 수 있어.”


  “알겠어요.” 검볼이 생각하는 척 하며 턱을 실없게 두드렸다. “선생님께서... 52,500개나 그 언저리라고 하셨던가요?”


  “알겠다.” 스몰 선생님이 클립보드에 써넣었다. “52,500개라고 내가...어, 잠깐만!” 당황한 그가 인상을 썼다. “‘내가 말했다는 게’ 무슨 소리야?”


  검볼이 빙긋거리며 대답했다. “아... 아시잖아요.” ‘아님 말구....’


  검볼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내며 다윈이 숫자를 부를 때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동생이 조금 더 진정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다윈의 짜증난 표정에 놀랐다(아주 조금이었지만).


  “어이, 친구, 밥 먹을 준비 됐어?”


  “그래.” 다윈이 투덜거렸다. “가서 혼자 먹던가.”


  다윈은 그를 밀치고 지나가 레이첼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 옆에 앉았다.


  검볼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기다리다 보면 아가미가 좀 식겠지. 괜찮을 거야.’


  그는 다윈과 그의 평소 자리 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예상대로 그가 본 것은 빈 자리였다. 그러나 검볼은 오늘 뭔가 다른 짓, 뭔가 건방진 짓을 해 보기로 했다. 학교 남자애들은 할 엄두도 못 내는 일 말이다.


  그는 얼굴을 차분히 한 다음 자신감을 갖고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또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목적지인 식탁 앞에 다다르자 그는 식판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숙녀 여러분. 오늘 기분이 어떠신지요?”


  검볼의 반 여자애들 가운데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몰리는 케이크를 먹으려던 채로 굳어 버렸고, 테리는 주스를 마시던 걸 그만두다 주스를 흘려 턱을 옅은 오렌지색으로 적셨다. 카르멘과 레슬리는 파스타를 우물거리던 걸 멈췄고 마사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검볼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페니만이 당황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황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안녕, 검볼.” 페니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안녕, 예쁜이.” 검볼이 윙크하며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얼굴을 붉히는 페니의 모습은 못 본체 했다. “다들 오늘 좀 어때?”


  이 뜻밖의 손님에 분명히 짜증이 나 보이는 마사미가 그를 노려보았다. “검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 같은데? 너희들처럼 점심 먹고 있잖아.”


  “아니 왜 ‘니’가 여자애들 자리에 있냐고!”


  검볼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건방지게 들렸지만. “‘여자애들 자리’라고? 미안해, 마사미. 이 자리가 특별히 지정돼 있는 줄은 몰랐네.”


  마사미가 인상을 더더욱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같은 자리에서 먹는 게 익숙해서 그런 거고, ‘넌’ 보통 여기 안 앉잖아!”


  “맞아.” 그가 케이크를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안 앉지. 근데 오늘 내가 뭔가를 잊어버려서 다윈이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그래서 오늘은 혼자 앉기보단 좀 다른 데 앉아 보기로 했어. 어차피 여기 한 자리 비잖아.”


  “거긴 캐리 자리야.” 카르멘이 말했다.


  검볼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정말로? 그건 좀 의미 없는 거 같은데. 그게, 걘 맨날 둥둥 떠다니잖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마사미가 점점 먹구름으로 변하며 쏘아붙였다. “중요한 건 우린 네가 여기 앉는 게 싫다고!”


  “진짜?” 그가 태연하게 물었다. “니들 ‘모두’ 내가 여기 앉는 게 싫은 거야? 뭐, 너희 모두 남자애들 싫어하고 그런 거야?”


  “뭐?” 페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검볼! 우린 남자애들 싫어하고 그런 거 아냐. 봐, 레슬리도 우리랑 같이 여기 앉잖아.”


  레슬리가 자기 초록빛 풀잎을 들어 흔들었다.


  검볼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페니는 좀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고’, 레슬리는 남자잖아.”


 “그래?”


  여자애들 모두가 살짝 놀랐다. 꽤나 심기가 불편해진 레슬리가 입을 열었다. “어, 나 남자거든?”


  검볼이 히죽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진짜로?”


  “어, 진짜로! 그리고 너도 알고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라커룸에서 날 몇 번씩이나 마주쳤는데!”


  “뭐, 그렇지. 그래도 난 막 쳐다보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구. 아니, 레슬리 우린 친구지만, 그건 좀?”


  충격을 받은 레슬리의 노란 얼굴이 물러터진 토마토로 만든 주스보다도 붉게 변했다. 그를 둘러싼 여자애들의 얼굴은 이보다 휘둥그레질 수가 없었다. 얼굴이 잿빛이었던 마사미의 불만은 사실상 사라져 버렸고,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검볼!” 페니가 언짢은 듯이 말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그가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어쩌면 지금 나한테 벌어지고 있는 일이 감당이 안 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페니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라고?”


  “내가 말해 줘도 믿지 못할 거야. 지금 난 그냥 생각보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상태라고 해 둘게. 뭐, 아무튼 다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걸 바라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냥-”


  “안녕, 검볼.”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검볼은 캐리가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그의 옆으로 날아온 것을 보았다. “혹시-” 고개를 들자, 캐리는 순간 검볼이 어디에 앉아있던 건지 깨달았다. “검볼, 왜 다른 여자애들이랑 같이 앉아있는 거야?”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에, 일상에 변화를 좀 줘 볼까 했는데, 애들이 내가 여기 있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나 봐. 물어보는 이유라도 있어?”


  “아, 어... 딱히 별 이유는 없는데.” 캐리가 옅은 홍조를 숨기며 말했다. 오직 페니만이 그 모습을 눈치 채었다. “아무튼, 혹시 이 케이크 먹는 것 좀 도와줄 수 있어?”


  검볼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안될 거 있나.”


  캐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로?”


  “정말로?” 페니가 놀라서 물었다. “검볼, 지난번에 캐리한테-”


  그러나 페니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검볼은 자신이 반쯤 먹던 케이크와 캐리의 것을 붙잡았다. “입 크게 벌려.” 그게 말했다.


  캐리가 눈을 깜박였다. “뭐?”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검볼은 의자에서 유령 소녀의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그리고 케이크 두 조각을 손에 들고 캐리의 투명한 머리 너머로 맞부딪혔다. 케이크는 갈색과 녹색이 뒤섞인 샌드위치가 되어 버렸다. 그 조각들은 캐리의 놀란 얼굴에 부스러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자, 됐지, 캐리?” 검볼이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있어요, 숙녀 여러분. 너도, 레슬리. 그리고 방금은 그냥 농담한 거였어.”


  검볼은 멍해진 얼굴의 여자애들을 (레슬리도) 내버려둔 채 자리를 떴다. 캐리의 시선은 자기 뭉개지고 엉망이 된 자신의 케이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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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복도를 활보하던 검볼은 다음엔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학교 일과는 반이 지났고 그는 펩 페스트 전에 정신 나간 짓을 딱 하나만 더 해보고 싶었다. 그냥 오늘 하루를 웃음 넘치는 날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뭘 해야 할까? 어쩌면 그는 어떻게든 아나이스에게 장난을 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물함에 접착제를 발라놓는다던가 해서. 하지만 그건 너무 유치해 보이기도 했고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말할 것도 없었다. 검볼은 아나이스가 그의 장난에 한번 쉬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대신 다윈에게로 향했다.


  그의 생각에는 다윈이 이 성적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가져가는 것 같았다. 물론, F를 받는 것은 웃을 일이 아니지만 그냥 작은 성적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성적이 루프의 끝으로 향하는 길을 막는 요소가 아니라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검볼은 다윈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뭔가 해야만 했다. 아니면 정말 적어도 뭔가 그의 관심을 돌릴 거리를 주어야 했다. 뭔가...예상치 못한 일... 그러자, 검볼의 머리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생각들로, 엄청 황당한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다. 그게 실현되는 걸 본다면 분명 놀라움의 극치를 보여줄 것이었다.


  ‘루프,’ 그가 비웃듯 생각했다. ‘네가 정신 나간 일에는 한계가 있을지 한번 보자구.’


  자습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검볼은 보건실로 가서 문에 난 창으로 내부를 엿보았다. 반창고 간호사가 서류 몇 쪽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서류에서 손을 떼고 시계를 바라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보건교사들의 점심시간이거나 티타임일 것이었다. 그녀가 펜을 내려놓고 도시락 통과 보온병을 책상에서 꺼내는 걸 보면 분명했다. 그녀는 보건실에서 나갔다. 문 뒤에 숨어있던 검볼은 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녀가 복도 멀리로 사라져 가자 검볼은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책상에서 무선 전화를 낚아채었다.


  그는 번호를 누르면서 숨죽여 웃었다. 검볼의 머릿속이 엉뚱한 생각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이 일은 웃기거나 진짜 기괴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서 그 누구도 웃음을 터뜨리는 걸 피할 수 없을 거야.’


  검볼은 전화기를 파란 귀에 가져다 대며 목을 가다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이 통화를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전문가처럼 들리게 해야 했다. 그런데 또...누가 이 전화를 받는지를 생각해 보면...불필요한 일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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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워터슨은 집으로 돌아와서 소파에 앉아 그의 하루 일과인 3초마다 채널 돌리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그는 평일에 늘 이와 같은 일을 해 왔었고 그 고요한 시간 동안 일상의 틀을 깨는 어떠한 일도 겪어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화기가 울렸다.


  그는 TV를 음소거한 채 수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워터슨네 집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정중하고 어른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윈 워터슨 씨의 아버지, 리처드 워터슨 씨 맞으시죠?”


  “네, 누구세요?”


  통화선 반대편의 남자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엘모어 병원의 의사, 데드릭 닥터슨입니다. 검사 결과에 양성 반응이 나와서 알려 드리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리처드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의 머리는 의사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 뭐가 양성 반응이 나왔는데요?”


  “댁의 자제분인 다윈 워터슨 씨가 임신을 했습니다.”


  “오오. 알겠어요. 알려 주셔서 감- 잠시만요, 뭐라구요?” 리처드가 소리쳤다. “다윈이요?”


  “네.” 의사가 다시 알렸다.


  “임신이요?”


  “네, 아버님과 가족분들 모두 따뜻한 축하의 말씀 드리기를 바랄게요.” 딸깍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리처드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삑삑거리는 전화기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뒤죽박죽이었다. 곧, 그는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레인보우 팩토리를 가리키는 R에 다다르자, 그는 손가락을 짚고 아래로 훑으며 백 개가 넘는 부서와 사무실 번호들을 살피었다.


  “어떤 번호가 니콜 거지?” 그는 여러 그룹들을 미친 듯이 훑어보았다. 기억이 나질 않자 커다란 토끼는 전화기를 붙잡고 번호를 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번호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그 와중에 전화를 걸었던 반대편에서는 검볼이 보건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럼 이제 작은 루머가 하나 만들어졌으니, 얼마나 빨리 퍼질 수 있는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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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습 시간은 평범하게 재밌는 일 하나 없이 끝났다. 그 후로는 시미언 선생님이 교실에서 지루한 강의를 계속해 나갔다. 검볼 오른쪽에 앉아 있던 다윈은 아직도 아침의 그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여러분들도 보시다시피,” 시미언 선생님이 말했다. “만약에-”


  콰앙!


  시미언 선생님이 천장을 향해 펄쩍 뛰어오르는 한편 검볼을 제외한 반 학생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교실 문이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문가에 서 있던 사람은 니콜 워터슨이었다.


  움츠러든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며 그녀가 소리쳤다. “어디 있어?”


  다시 바닥으로 뛰어내려온 시미언 선생님이 그녀를 조롱했다. “원하는 게 뭐냐, 패배자? 이렇게 멋대로-”


  니콜은 시미언 선생님의 머리를 붙잡고는 그녀를 교탁 의자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분노로 끓어오르는 니콜은 학생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며 다가왔다. 쾅쾅 내딛는 발걸음이 타일 바닥에 구멍을 냈다.


  검볼은 평온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유유하게 흐르는 물결처럼.*

  *(원문의 관용구는 ‘calm(cool) as a cucumber’로 매우 침착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니콜이 다윈 앞에 멈춰 서서 이빨 사이로 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긴 거야?”


  “‘무슨’ 일이 생겼는데요?” 겁에 질린 다윈이 끼익 소리를 냈다.


  “모르는 척 하지 마!” 그녀가 그의 책상을 손으로 내리쳤다. “도대체 어떻게 임신을 한 거냐고!”


  “전-” 다윈의 얼굴은 돌이라도 집어삼킨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검볼은 제외한 모든 학생들은 당황하고 기겁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똑바로 들어라, 패배자!” 시미언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무슨 일을-” 그녀의 눈초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잠깐만, 뭐라고?”


  “네???” 다윈이 소리쳤다.


  “그만 하면 됐어!” 니콜이 다윈의 지느러미를 붙잡고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곧장 의사한테 가서 물어볼 거야.”


  “그치만요, 엄마. 진짜로, 저 임신 안 했어요! 게다가 전-” 하지만 다윈은 문 밖으로 끌려 나갔고 나머지 목소리는 복도 저 너머로 묻혀 갔다.


  시미언 선생님과 검볼을 제외한 아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교실 문을 쳐다보았다.


  “대체 오늘 하루는 왜 이런 거야?” 시미언 선생님이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물론, 검볼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럼 이제 이렇게 해서,’ 그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킥킥 웃어대며 생각했다. ‘다윈에게 조퇴할 거리를 만들어 준 셈이지. 감사는 나중에 받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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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볼이 하루 종일 짓고 있던 입가의 미소는 저녁까지 이어져 갔다. 집에 돌아온 검볼은 새 MP3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웃는 얼굴로 소파에 앉아 뒤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을 못 들은 체 했다.


  부엌에서는 니콜과 리처드가 그날 오후부터 이어진 혼란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당연히 다윈은 임신을 하지 않았었고 니콜에 병원에 갔을 때, 아무도 워터슨네 집에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데드릭 닥터슨이라는 의사는 병원에 있지도 않았고, 주 어디에도 면허가 있는 그런 이름의 의사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니콜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에 근무 시간에 세 시간이나 손해를 봤고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빠야 했다. 리처드도 워터슨 가에 새로운 꼬마가 생긴다는 생각에 조금 산만해 했다. 딱히 그가 그 생각을 꺼렸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그는 언젠가 할아버지가 되면 좋아할 것이었다.) 지금 있는 세 명의 아이들로도 충분히 좋았다. 그래도 이 사실에 꽤나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니콜에게 연락을 취하고 소식을 전해준 후에, 그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새 아기 용품을 구하려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는 데 썼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이미 검볼과 함께 아침을 먹으러 달려가는 데 힘을 많이 쓴 터라 힘든 일이었다.


  검볼은 시선을 계단 위로 돌리며 방에 있을 다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정신 나간 하루에 얼마나 짜증이 났을지. 나쁜 성적을 받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학교에서 나와 펩 페스트마저 참관하지 못했다. 검볼은 그를 탓할 수 없었다. 그래도, 뭐, 언젠가는....


  한편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나이스는 꽤나 짜증스러운 얼굴로 오빠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의 예상이 병 안에 들어 있던 커피콩 개수에 가장 근사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그녀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볼이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뭐라고?”


  “다 들었잖아!” 그녀가 소리 질렀다. “게다가 거기 노래는 들어있지도 않잖아! 그냥 두 시간동안 상상하기만 한 거지! 그거 진짜 바보 같거든?”


  “뭐, 노래를 살 때까진 그냥 여기 앉아서 이러고 있을 거야. 이 조그마한 기계가 나에게 가져다줄 즐거움을 상상하면서 말이야.”


  아나이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그녀의 인상은 질투심에 더더욱 찌푸려졌다. “다시 말해봐. 병 속에 대략 52,500개의 콩들이 있을 거란 걸 정확히 어떻게 안 거야?”


  “말해 줬잖아.” 검볼이 단순하게 말했다. “그냥 그 병에 맞을만한 가장 커다란 숫자를 하나 집어서 때려맞춘 거라고.”


  이 말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나이스는 그 진실을 알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검볼이 사실을 분다고 할지언정 아나이스는 시간 루프같이 해괴한 일을 믿기에는 너무 고지식했다.


  “알잖아, 커피콩의 개수가 백 단위에서 약간 빗나갔다는 거. 몇 개였더라, 600얼마?”


  “691!” 아나이스가 매섭게 소리쳤다. “겨우 191개 차이라고!”


  “다시 알려줘서 고마워.” 검볼이 상냥하게 말했다. “다음번에 써먹으려면 기억해 둬야 해서 말이야.”


  아나이스가 그를 미심쩍은 듯이 쳐다보았다. “‘다음 번’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아, 아니야. 별로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그는 얼굴에 퍼져나가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아나이스는 인상을 쓰며 소파에서 내려왔다. “아하.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알아낼 동안 기다리고 있어.”


  검볼은 고개를 저었다. “수작 같은 건 없어.”


  “물론이죠, 어련하시겠어요.” 그녀가 비꼬듯이 대답했다. “계산기 없이는 큰 숫자의 나눗셈은 하지도 못하는 오빠가 갑자기 MP3를 가져다줄 마법의 숫자를 떠올렸다고?”


  “그랬을지도.”


  짜증이 난 아나이스가 씩씩거렸다.


  “아나이스, 정말로 그냥 내가 엄마한테 접시 얘기를 안 해서 화난 게 아니라고? 내가 더 큰 어려움에 처할까봐 몰래 걱정돼서? 아아, 너도 참.” 그가 상냥하게 말했다. “네가 날 그렇게 걱정해 주는 줄은 몰랐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깜짝 놀란 아나이스는 눈을 깜박였지만 곧 이를 악물고 정말 화난 듯이 으르렁거리며 자기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파에 드러누운 검볼은 편안함에 한숨을 내쉬며 TV를 틀었다.


  “이어서,” 뉴스 앵커가 말했다. “엘모어와 세이모어 사이의 경기는 누가 8강에 진출하게 될 지를 가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잠시 오늘의 복권 당첨번호를 불러 드리는 동안 채널 고정해 주세요.”


  광고가 흘러나오자 검볼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노트 하나 가져와야겠는데.”


  노트를 챙겨 소파로 돌아온 검볼은 셔츠 칼라를 잡아당겨 어깨의 검정색 8자를 드러내고는 거기에 입을 맞추었다. 지금 이 순간, 그 징표는 그의 연푸른빛의 털과 어우러져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검볼은 다시 칼라를 접어 넣고 TV 화면에 나오는 다섯 개의 복권번호를 적었다.


  “내가 가진 시간을 이용해서 또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한걸.” 그가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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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지금은 이게 끝입니다, 여러분들. 검볼의 재미는 다음 챕터에서 시작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더 빨리 진행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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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b]


 네, 오랜만에 휴가 나와서 하나 올리고 갑니다. 저는 the loop 번역할 때 마다 나레이션을 존댓말식으로 썼었는데 주변에다 물어보니까 다들 반말로 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을 들어서 그렇게 바꿨습니다. 부족한 번역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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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가놈]


전체 플롯 번역의 1/4이 끝났습니다. 다음 챕터는 2부로 나누어집니다.


*toaster pastries (토스트용 페이스트리): https://youtu.be/haxL7vdVYE0?t=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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