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해당 팬픽은 2011년 12월, 검볼 1시즌이 한창 방영중일때부터 쓰여져 왔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검볼의 설정과 다를 수도 있으니, 시즌 1 분위기로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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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가놈]
본 역주는 이 픽션과 검볼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일절 갖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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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op
Written by Mr. Page
11. 조각난 시간, 1부
원본 : https://www.fanfiction.net/s/7647419/11/The-Loop
검볼은 살면서 최악의 날을 겪고 있고, 이건 그걸로 끝나지 않네요. 사실, 절대 끝나지 않아요! 검볼은 타임 루프에 갇혔고, 내일이 오기를 바란다면, 뭐가 문제인지 맨 밑바닥까지 샅샅히 뒤져봐야하죠.
독서 연령: Fiction K+ (만 9세 이상)
장르: 판타지/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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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조각난 시간, 1부
이 월요일 아침이 선사하는 맑고 푸른 하늘은 무시한 채, 짜증난 니콜이 집에서 걸어 나와 차도 앞에 멈추었다. 조금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그랬듯이 6시 15분에 일어나 잠시 스트레칭을 했다. 가족들이 보통 월요일 아침에는 기운이 없었기에 조용한 아침식사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녀는 분홍색 샤워 가운을 걸치고 느긋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좀 달랐다.
부엌에 들어서자 그녀는 사건의 냄새를 맡았다. 근원지는 바로 가장 흔치 않은 곳, 냉장고 위였다. 위에는 그녀의 귀한 중국 접시가 하나 놓여 있었다. 작은 녀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접시를 집어든 그녀는 가운데 부근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엉성하게 풀로 붙여놓은 상태였다. 두 조각은 위치가 어긋나 있었고 풀을 과하게 발라 놓은 걸로 보았을 때, 누가 부수었는지 분명 급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걱정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했는지는 자명했다. 끈적거리는 접시 표면에는 파란 털 한 가닥이 붙어 있었고, 그것은 니콜의 것이 아니었다.
니콜은 아들의 이름을 외쳤고, 거의 곧바로 검볼이 부엌으로 들어섰다. 놀라울 정도로 태연한 얼굴로 말이다. 니콜이 자신이 얼마나 속상한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검볼이 그녀에게 다가와, 접시를 붙들고, 이마에다 내리쳤다.
“오파!” 그가 축하하며 소리쳤다.
니콜은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두 세대를 버티고 부서져 버린 접시를 쳐다보기만 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녀는 차 문을 쾅 닫고서 시동을 걸었다.
“지난번에 같이 본 그리스 문화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거였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며 도로변에서 차를 빼내어 일터로 떠났다. 접시 하나 정도는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고 되새기면서.
그녀는 다정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검볼도 진심으로 그랬던 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니콜이 떠나고 오래지 않아, 아나이스와 다윈이 집 밖으로 나와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따스한 아침햇살을 쬐면서, 둘은 짜증으로 투덜대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길가에 서 있었다. 둘 모두 검볼에게 불만이 있었다.
오늘 아침, 아나이스가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검볼에게 엄마의 접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오빠들의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검볼이 그녀를 앞으로 잡아 끌었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녀를 천장에 닿을 정도로 던져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공중에 떠 있을 때 그는 다윈에게로 달려가 소리를 질렀다. “야, 친구!!!” 그를 깜짝 놀라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윈이 든 어항을 공중으로 집어던졌다. 그 와중에 아나이스는 바닥에 떨어져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항이 바닥에 떨어져 엎어지는 모습을 보자 재빨리 반응했다. 이 이른 아침, 검볼의 모든 정신 나간 행동은 그저 이 말을 위해서였다. “둘 모두 일어난 걸 보니 좋네. 서두르지 않으면 하루가 먼저 시작돼 버릴 거야. 아, 그건 그렇고, 아빠가 넥타이를 새로 사셨으니까 관심 있는 척 좀 해줘.”
그의 그 거만한 태도는 아침식사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의 형제들과 어머니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마치 현재를 벗어나 그만의 세상 속에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은 그가 주말동안 보여주었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들떠서, 산만하고, 주변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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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아나이스가 이를 닦고 보도로 나가는 동안, 검볼은 방에서 옷장 서랍 하나를 뒤지고 있었다. 오래 전에, 완전히 못 입게 됐다고 생각했던 잔디로 얼룩진 셔츠 아래에 숨겨져 있던 1달러짜리 지폐 5장을 집어 들었다. 검볼은 뭔가 특별한 걸 위해 이 돈들을 나머지와 함께 숨겨두었었다. 바로 오늘, 아니면 어제를 오늘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이 몇 푼 안 되는 돈을 루프에 갇히기 이전에 꿈꿔왔던 액수 이상으로 불리고자 했다.
방에서 뛰쳐나와 아래층으로 돌아온 검볼은 막 소파에 드러누운 리처드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막 TV를 틀며 아침을 낭비하고자 하던 참이었다.
“아빠,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검볼이 물었다.
“그럼, 아들.” 리처드가 말했다. “힘쓰는 일은 아니지? 응?”
“그냥 좀 걷기만 하면 돼요. 안될까요?”
“음... 그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뭘 시킬 거니?”
“근처 주유소에 가 주셨으면 해요. 여기 5달러 받으세요.” 그는 돈을 내밀었다. “그리고 복권 5장을 이 번호들로 해서 사 오세요.” 검볼은 바지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그에게 넘겨주었다. 종이를 펼친 리처드는 상위 5개 복권 리스트에 무작위로 뽑힌 번호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리처드가 아들을 쳐다보았다. “검볼...너도 너희 엄마가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니.”
“알죠.” 그가 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뭔가 이 숫자들이 감이 좋은걸요.” 여기서 감이란 말은 당연히 그가 이 숫자들을 저녁 내내 머릿속에 박힐 때까지 되뇌고 되뇐 결과였다. 그가 시간 루프 속에서 기억하게 된 다른 일들처럼 말이다.
반면 리처드는 그다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검볼, 아직 그런 걸 하기에는 넌 아직 너무 어려. 오해는 하지 마렴, 수백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건 흥미진진한 거니까. 아, 나도 모르겠어!” 그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나’조차도 복권에 당첨되는 게 어렵다는 건 안단다. 너희 엄마가 이런 일에 대해서는 끔찍이도 엄격하게 나온다고, 너희 엄마를 탓한다는 게 아니야. 마지막으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도박에 손을 댔을 때, 우린 우리 가족의 돈을 대부분 잃었단다.”
리처드의 얼굴이 축 쳐졌다. 분명 아무것도 주지 않을 인터넷 도박에 평생 누구도 손에 대지 못할 액수를 걸어 버렸던 일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 실수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니콜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리처드는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빠,” 검볼이 동정하며 말했다. “이건 달라요. 그건 수천 대였잖아요. 이건 그냥 5달러일 뿐이에요. 게다가, 이건 제 돈이잖아요. 전 이 돈으로 우리에게 더 큰 돈을 불러오고 싶어요.”
검볼은 아버지에게 돈을 내밀고는 창문을 밖을 보기 위해 뒤쪽을 흘끗 보았다. 아나이스와 다윈이 여전히 보도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도 이제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빠?”
리처드는 아들이 준 목록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이 숫자들이 왜 뽑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숫자에 관한 건 ‘평생’ 그의 장기가 아니었으니 리처드는 검볼이 이 숫자들을 어떻게 특정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알겠어, 검볼. 딱 한번만이야. 오늘 이후로는 더 이상 받아 주지 않을 거야. 내가 철이 없을지는 몰라, 하지만 나도 우리가 돈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아. 복권 같은 일이라면 더더욱.”
“아빠, 절 믿어 보세요.” 검볼이 아버지에게 돈을 건넸다. “만약에 이게 성공하면(당연히 성공하겠지만), 우린 돈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적어도 내일이 올 때까지 전 이 일을 다시 해야 될 거고 우린 이 대화를 또 해야 되겠지만요.’
그의 아버지가 달리 무슨 말을 더 꺼내기 전에, 검볼은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스쿨버스가 아마도 방금 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윈의 꼬리지느러미가 출입문 근처 가장 가까운 좌석에서 사라질 무렵 버스를 잡아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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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에, 검볼은 버스에서 내려 바로 아버지에게 가기 위해 거실로 잽싸게 향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티켓을 숨겨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소파 옆에 그의 어머니가 허리에 손을 짚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녀 뒤에서 풀이 죽은 채로 손을 들고 서 있었다.
니콜은 검볼이 많이 봐왔던 그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윈과 아나이스가 걸어 들어와 문을 닫고 나자 그녀는 주먹에 움켜쥔 것을 꺼내보였다.
“검볼,” 그녀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게 뭐니?”
그녀의 아들은 한 치의 불안감도 없이 종잇장을 태연하게 쳐다보았다.
“글쎄요, 뭐인 것 같은데요, 엄마? 서커스 티켓?”
“뭘 잘했다고 그러는 거야, 이 녀석아! 복권에 돈을 갖다 바치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리고 당신!” 그녀는 멋쩍게 미소를 짓는 남편을 향해 돌아섰다. “어떻게 아들 말에 넘어가서 그럴 수가 있어요! 복권이라고요, 리처드!”
그가 손을 든 채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아요, 안다고요. 니콜! 하지만 이번 건 겨우 5달러짜리였고, 검볼이 진짜로 확신이 있어 보였단 말이에요.”
“‘확신’이라고요?” 니콜이 더 화가 나서 말했다. “복권에 ‘확신’이라는 건 없어요, 리처드! 당첨률이 너무 낮아서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냥 뒷마당을 파서 금덩이가 나오길 바라는 게 낫다고요!”
“진짜로요?” 리처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뇨! 그냥 말이-” 니콜은 짜증을 내며 미간을 손가락으로 꼬집고는 검볼을 향해 돌아섰다. “검볼.” 그녀가 엄중했지만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주렴.”
그녀의 아들이 답했다. “오늘 저녁까지는 모를 일이잖-”
“약속해 줘!” 그녀가 다시 말했다. “부탁이야.”
검볼이 한숨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그는 이 말을 내뱉으면서 약간 기분이 나빴다. 어차피 부질없는 약속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음 반복 속에 눈을 뜨면 모든 일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이 모든 대화는 없던 일이 될 거고.
니콜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그리고 그녀는 복권 5장을 손에 들고서 검볼에게 건넸다. “이제 이건 갖다 버려 주렴.”
리처드가 아쉬운 듯 끄응 소리를 냈다. “아, 니콜. 혹시라도 저게-”
“절 믿어요, 여보. 그럴 일 없어요. 내 아버지는 수년간 복권을 하셨지만 단 한 번도 당첨되신 적이 없어요. 인정해요, 아버지는 안목을 십분 활용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 중에 3개보다 많이 맞추시지는 못하셨어요. 검볼, 버려 주렴, 부탁할게.”
검볼은 차분한 얼굴로 손을 뻗어 어머니의 손에서 복권을 집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쓰레기통 위로 손짓을 했지만 복권을 안에다 넣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재빨리 스웨터 속에 집어넣고는 움직여도 구겨지지 않도록 공간을 넉넉히 만들어 주었다. 뒤를 돌자 만족한 얼굴의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약 한 시간이 지나 니콜이 막 저녁을 준비할 무렵, 검볼은 소파에 앉아 저녁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틀었다. 그가 불렀다. “다들 잠깐 여기 좀 와 봐요!”
니콜이 부엌에서 걸어 나왔고, 아나이스와 다윈은 각자 방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소파 한구석에서 자고 있던 리처드는 누군가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헉 소리를 내며 고개를 사방팔방으로 휘저었다.
“아으...소리가 너무 크다, 아들아.” 그가 커다란 분홍색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같은 생각이에요.” 니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니, 검볼?”
“다들 집중해 주세요.” 그가 TV를 가리켰다. 그의 가족은 다용도 정원용 호스를 홍보하는 광고를 보았다. 호스는 견인, 갈고리, 할로윈 장식, 심지어는 내시경으로도 쓸 수 있었고 이 모든 구성이 단돈 19.95달러씩 25회 할부라고 했다.
“검볼.” 니콜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우린 저런 거-”
“‘저거’ 말구요!” 검볼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요!”
TV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러고 나자 저녁 뉴스 로고가 반짝 지나갔다. 곧 빨강색과 검정색으로 쓰인 두 단어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복권’
“자리에 앉아요, 엄마.” 검볼이 소파에서 뛰어내리고는 어머니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니콜이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아니야, 검볼. 나 저녁 해야 된-”
“진심이에요.” 검볼이 심각하게 대답했다. “이걸 보셔야 돼요.”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뻗어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들고는 어머니에게 건넸다. 호기심이 생긴 니콜을 소파의 빈자리에 앉아 쪽지를 펼쳤다. 상위 다섯 가지 복권의 번호 모음이 적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리처드에게서 압수한 복권에 적혀 있던 번호와 일치했다.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니콜의 입에서 살짝 튀어나왔다. “검볼! 이건 그냥 시간 낭비라고 했잖니! 방금 전에 분명-”
검볼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한 순간에 니콜의 목소리는 잠잠해졌다. 두 눈은 검볼이 가리키는 TV 화면으로 향했고, 아나운서가 시청자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즐거운 월요일 저녁입니다, 여러분.” 아나운서가 밝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잭팟 당첨자 발표는, 늘 그랬듯이 국영 복권부터 시작합니다. 당첨 번호는...”
각각의 복권에 대해 아나운서는 뽑기 기계에서 무작위로 튀어 나오는 번호를 불러내었다. 차례대로 각 복권 번호들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추첨이 끝나자 푸른 고래만한 침묵이 워터슨 가의 거실을 짓누르고 있었다.
리처드, 다윈, 그리고 아나이스의 입은 쩍 벌어져 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충격으로 완전히 한 방 먹은 듯 했다. 그들은 아나운서가 번호들을 불러내자 종이에 적힌 번호들을 막 읽은 참이었다. 검볼이 보여준 종이에 적힌 모든 번호들이, 단 하나도 남김없이...
니콜은 종이를 양손에 붙들고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천천히, 그녀는 적혀 있던 숫자들을 벌써 10번이나 내려다보았고, 다시 TV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기쁘지도, 속상하지도 않아 보이는 그저 무미건조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평온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몸 전체가, 파란 귀부터 복슬복슬한 발까지 마치 소파에 용접되어 버린 듯 딱딱하게 굳어 보였다.
“어...자기야?” 리처드가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니콜은 어디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니콜?”
5분이 지났지만 니콜은 완벽하게 조각된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한 곳에 평생 앉아서 영원히 영혼 없는 표정을 지으며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조각상이었다.
검볼은 그녀의 손에서 종이를 가져가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쯧. 안됐네요, 엄마.”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어쩌면 내일은 또 모르죠.” 그리고 그는 번호들이 적힌 목록을 소파의 팔걸이에 나란히 올려두었다. 니콜은 아직도 종이를 붙잡고 있는 듯 공중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뭐,” 검볼이 어깨를 으쓱했다. “전 저녁 준비하러 가 볼게요. 누구 도와주고 싶은 사람 있으면 참 좋을 것-”
“복권을 찾아!!!” 리처드가 소파에서 펄쩍 뛰어 공중에서 부엌을 향해 벽을 뚫고 튀어나갔다. 리처드는 목재와 벽토를 뚫고 돌진해서 생긴 어마어마한 고통을 무시해가며 부엌의 쓰레기통을 뒤집어 바닥에 쏟고는 굶주린 노숙자처럼 내용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물론 검볼은 더더욱 태연하게 굴었다.
“있잖아요, 아빠.” 검볼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리처드를 향해 말했다. “엄마가 복권을 꺼내서 다른 집 쓰레기통에 집어넣으시는 걸 본 거 같아요. 혹시라도 우리가 도로 꺼내지 못하게 하려고요.”
이 말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었다. 복권은 여전히 검볼의 스웨터 속에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리처드는 하던 걸 멈추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히죽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검볼이 말했다. “자, 다윈, 아나이스. 같이 저녁이나 만들자.”
검볼은 먹을 것들이 들어 있는 찬장을 뒤져서 구운 맥 앤 치즈 상자를 붙잡았다. 위에 뿌릴 빵가루를 찾아보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어떻게 복권 번호를 알아낸 거야?” 아나이스가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그녀와 다윈은 부엌 문간에 서 있었다. 검볼은 못 들은 체하며 계속해서 재료들을 찾았다. 그녀가 다시 물어보았지만, 검볼은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내 말 좀 들어, 검볼! 그 모든 복권 번호들을 오빠가 모두 알아낼 방법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오빠한테 신이라도 내려야-”
아나이스는 저녁을 만들려고 하는 검볼에게 계속해서 그런 말들을 내뱉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한 치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비견되는 요리 실력으로 식사를 준비하며 그는 조용히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공공 쓰레기통들을 뒤지고 다니고 계실지 생각했다.
검볼은 오븐에서 맥 앤 치즈를 꺼냈다. 그 부드러운 냄새가 따뜻한 향초처럼 부엌을 가득 채웠다. 검볼은 식탁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는 접시 세 개와 포크 세 개를 가지러 부엌으로 돌아갔다. 식탁 앞에서는 아나이스가 기진맥진해하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검...볼,” 그녀가 헉헉거리며 말했다. “말해줘...오빠가 대체...어떻게 한 건지. 이건...이건...불가능해. 이건...말이 안된-”
“진정해, 아나이스.” 검볼이 상냥하게 말했다. “너처럼 똑똑한 아이라면 곧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맥 앤 치즈로 그 조그마한 뱃속을 채워주는 게 어때?”
“응? 어... 알겠어, 그게 가장 나은 생각인 거 같네.”
세 워터슨 형제들은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나서 밤이 깊어지자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무거운 숨결을 내쉬던 아나이스는 이 복잡한 상황에 대해 중얼거리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검볼의 복권 운에 대한 논리적인 답을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었다. 다윈은 검볼의 부주의로 인해 생긴 과학 보고서 건으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 감정적으로 지쳐버린 그는 자기 전에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기로 했다.
한편 검볼은 설거지를 하고 엘모어와 세이모어 간의 미식축구 경기를 보았다. 이 경기 중계는 화면에 긴급 속보가 나오며 잠시 중단되었다.
속보에 따르면 커다란 분홍색 중년 토끼가 엘모어 전역의 공공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고 있으며, 아홉 개의 차고 문이 강철 프레임에 뚱뚱한 토끼 모양의 구멍이 생겼고, 시의 쓰레기장은 침입자의 흔적이 있었으며, 모든 수거 트럭은 내부를 수색당한 뒤 전복되어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쓰레기가 동네 잔디밭과 길가로 넘쳐흐르고 있다고 했다.
뉴스 리포터가 말했다. “경찰이 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남성을 체포했을 때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지독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 가운데 알아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은 ‘복권, 복권을 찾아야 돼요.’ 였습니다. 이 남성의 광기 넘치는 행동과는 별개로, 그는 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이 행동은 국가 경제로 인한 것이었을까요? 내일 이 사건에 대해 더 자세하게 대화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엘모어와 세이모어의 경기를 계속 지켜보시죠.”
검볼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히죽거리며 킥킥대었다. 니콜은 복권 발표 이후 다섯 시간 동안 TV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숨도 제대로 쉬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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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빠, 잘 들어요.” 다음날 검볼이 말했다. “여기 5달러 받으시고, 이 목록에 적힌 번호로 복권을 사세요. 그리고 엄마한테 말하거나 보이는 곳에 두지 마세요. 아예 그냥 집에 오시면 거기다 냄새 제거제까지 한 번 뿌리세요. 제가 보기에 엄마는 문제거리의 냄새를 맡으실 수 있는 거 같애요. 분명히요.”
리처드가 아들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검볼은 재빨리 집을 나와서 버스에 올라탔다.
검볼이 집에 오자 그는 저녁 뉴스를 기다렸고 모두를 거실로 불러 모았다.
“무슨 일이니, 검볼?” 가족들과 소파 주위에 모여 있던 니콜이 물었다.
“일단 보세요.” 검볼이 TV를 가리켰다. “아빠, 복권 꺼내요!”
“그래, 아들.” 리처드가 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복권?” 니콜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리처드, 어째서 복권을-”
“쉬잇!” 검볼이 으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복권 번호를 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의 놀란 얼굴이 거실을 뒤덮을 때 그는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번호들이 모두 나오자 그의 가족들의 얼굴은 눈이 왕방울만한 복화술 인형처럼 되어 버렸다.
“다섯 개 복권 모두...우리가...당첨됐어.” 아나이스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냘픈 숨결을 내뱉었다.
검볼은 머릿속으로 다섯을 셌다. 지구가 흔들릴 법한 환호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나까지 모두 세었을 때, 그의 귓가를 채운 것은 그저 멍한 침묵뿐이었다.
곧 그의 어머니가 아나이스와 같은 당황 속에 입을 열었다. “이건...별로...좋지 않은걸...”
왜 나쁜가, 검볼은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리처드와 다윈이 흥분에 취하기 시작하고 니콜과 아나이스가 복권 다섯 장을 모두 제시할 수는 없다며 그들을 말리자 그의 방으로 돌아갔다. 열띤 토론이 남은 저녁 시간 동안 뒤따랐다. 그다지 나쁜 일을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한쪽에서는 아버지의 다윈에게서 당첨을 설명할 황당한 방법들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쪽에서는 어머니와 아나이스가 반론을 제기하고는 복권을 제시하는 게 왜 참담한 결정이 될 것인지 덧붙였다. 열한시 무렵이 되자, 양측은 서로 지쳐 일단 하룻밤 자기로 했다. 내일 아침에 계속해서 얘기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검볼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미를 위해서, 검볼은 그 일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12일간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49백만 달러 가치의 복권이 된 국영 복권만을 샀다. 결과는 속 편했지만, 멀쩡히 지나갔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숫자들이 불려 나오자, 리처드는 흥분에 겨워 미친 듯이 뛰는 바람에 거실 바닥에 구멍을 뚫었고, 니콜은 레인보우 팩토리에 전화를 걸어 상사에게 일을 관두겠다고 말하고는 다른 동료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신 나간 마녀처럼 낄낄거리며 싫어했던 사람들을 기만하고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농담을 건넸다. 아나이스는 가족의 소비계획을 몇 개 만들어 분류하며 회계 전문가처럼 바쁘게 숫자들을 적어 내려가는 한편 어떤 대학에 입학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린스턴과 스탠포드가 그 목록들 가운데 있었다.) 다윈은 행복하게 자기 몫으로 뭘 할 수 있을 지 목록을 적었다. 개인 수중 발레 팀을 산다던가, 순수한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어항을 산다던가, 레이첼에게 개인 미용실을 선물해 준다던가...
검볼은 이 상황이 시작된 지 2분 만에 듣는 것이 진저리가 났다. 그는 당연히 가족들이 좋아할 줄을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는 어째선지 어머니가 소파에 앉은 채로 굳어 있던 때보다 더 나빠 보였다.
중산층에 속했던 그의 가족은 돈 걱정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럴 여유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부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신제품이 나와도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늘 있는 대로 생활해 왔고 나름 괜찮은 생활을 유지해 왔었다. 그런데 복권에 당첨된 일이 이 틀을 완전히 깨부숴 버린 것이었다.
리처드는 평소보다 더 부주의해졌다.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다.)
평소 냉정하고도 합리적이었던 니콜의 성격은 광기의 정점을 찍었다. 바로 그녀가 직장을 마치 반짝거렸지만 이제는 다 먹어버린 사탕의 포장지인 마냥 내팽개친 것이었다.
검볼은 언젠가 아나이스가 대학에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 5초 만에 스무 살이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는 천재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형과 소꿉놀이와 당나귀 데이지를 좋아하는 어린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어린 시절을 마저 보내지도 못하고 대학에 갈 계획을 하고 있다는 건 뭔가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자기 방의 남는 침대 대신 자기가 좋아하던 어항에서 자던 다윈은 이제 그의 어머니처럼 돈이 넘치게 됐으니 한때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버리고자 했다. 검볼이 기분을 상한 이유는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당연히, 다윈은 갖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 살 수 있었다. 그가 사려고 하는 값비싼 물건들도 검볼을 거슬리게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원래 애완용 물고기였던 다윈은 다리가 자라났고 가족의 일원이 되어, 그가 예전에 어떻게 살았건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다윈의 그 점이 바로 검볼이 그에게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었다. 그는 그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법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물건들을 끝도 없이 적어내고 있었다. 허상에 붙잡힌 것처럼 말이다. 어딘가...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검볼이 그냥 너무 멀리까지 생각한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맙소사! 내가 뭘 기대한 걸까? 우린 복권에 당첨된 거잖아! 누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안 받겠어? 누가 바랬던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를 안 느끼겠냐고. 누가 안 이러겠어?’
하지만...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그의 가족들이 계속 걱정되었다.
계단 가운데에서 그는 가족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자, 모두들!” 니콜이 검볼이 여태껏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수리비랑 병원비는 문제될 거 없으니까 미친 듯이 웃으면서 집도 막 부수고 다녀! 우후우우우우우우!!!”
겁에 질린 검볼은 계단에 앉아 그의 가족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25,000달러짜리 복권으로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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