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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azing World of Gumball/팬픽

[팬픽] Unwanted

[펭가놈]


이 소설은 검볼의 시점에서 니콜의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그 시점이 3인칭화 된 소설인 것 같네요. ‘나’ 라는 단어가 서술자의 입으로 언급되지는 않습니다만, 서술자의 말이 본인의 생각을 사실상 완벽히 대신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본 역주는 이 픽션과 검볼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일절 갖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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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wanted

Written by St Elmo's Fire


Translated to Korean by 펭가놈


원본 : https://www.fanfiction.net/s/13199191/1/Unwanted


독서 연령: Fiction K+ (만 9세 이상)


장르: 가족 & 상처/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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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슨, 눈앞에 보이듯 네 아이들은 산성 액체로 가득 찬 구덩이로 점점 내려가고 있네. 하지만 난 네 아이들 모두가 죽는 건 바라지 않아. 오, 이런. 난 네가 선택을 하길 원해. 누가 죽을 지 말이야. 나머지는 모두 살려 주도록 하지.” 니콜은 끔찍한 선택을 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누구의 예측대로도 되지 않을 선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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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볼은 머릿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5... 4... 3... 2... 1.


  그는 기다렸지만, 그의 형제들은 잠든 채였다. 그가 씩씩거렸다. 그는 틀림없이 몇 번씩이나 했을 터...


  다윈은 눈꺼풀이 떨렸고, 그가 끄응 소리를 길게 내뱉었다. 아아, 드디어.


  “허어? 무...무슨 일이야...?” 다윈이 중얼거렸다. 그의 팔이 움직였다. 아마 졸린 눈을 비비려 했겠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자 갑작스레 정신을 차리며 눈을 번쩍 떴다. “아아아악!” 그는 격하게 몸부림쳤지만, 마치 줄에 묶인 공처럼 우스워 보이게 주위를 흔들거리며 맴돌 뿐이었다. 그는 밧줄로 완전히 꽁꽁 묶여 있었다.


  “일어난 모습을 보니 기쁘네.” 다윈이 다시 그를 향해 돌자 검볼이 반쯤 비꼬는 조로 말했다. 검볼은 그를 묶은 밧줄에 대처하는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밧줄은 한번 적응하고 나니 생각보다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밧줄이 그다지 따끔거리거나 가렵지 않았기에, 그는 그냥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검볼?!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안 보여!” 다윈이 검볼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검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높은 창문을 통해 달빛이 조금이나마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그냥 기다리 -”


  “으아아아악!” 또 다른 높은 음의 비명이 어둠을 갈랐고, 검볼이 인상을 썼다. “이게 무슨 - 왜 내가 – 우린 그냥 집에 가고 있었는데, 모든 게 그냥...” 그 목소리의 주인은 크게 숨을 고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좋은 아침이야, 아나이스!” 검볼이 반겼다. 그는 움직여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지만, 짜증나게도 그녀는 그를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밧줄을 조심스레 이빨 쪽으로 옮겼고, 토끼의 본능에 지배당한 듯 밧줄을 갉아대기 시작했다. “소용없을 거야, 아나이스. 그냥 네 이만 상할 거라구.”


  그녀가 무언가 한마디 내뱉었다. “오, 그러셔? 그냥 누워서 연쇄 살인마가 우리를 죽이게 두자고? 참 좋은 계획이네, 검볼!”


  “연쇄 살인마? 연쇄 살인마?!?!?! 연쇄 살인마가 있는 줄은 몰랐어!!!” 다윈이 비명을 질렀다.


  “아냐, 아냐. 연쇄 살인마 같은 건 없어!” 검볼이 씩씩거렸다. 그는 다윈이 과호흡을 일으키는 소리를 들었다. “아나이스, 다윈을 무섭게 하는 건 그만 둬.”


  “아이구, 미안해라! 우리를 잡아다가 끝도 보이지 않는 구덩이 위에 매달아 놓으신 분께서는 그냥 단순히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 거겠죠?” 아나이스가 비꼬며 받아쳤다.


  “저게 끝없는 구덩이라고?!?!?! 으아아아아아악!!!”


  검볼은 손으로 자기 이마를 후려칠 수 있었으면 했다.


  “좋아, 아나이스. 네가 물어봤으니 말인데, 나한테 ‘계획’이 있어!” 그가 다윈의 비명소리 너머로 소리쳤다. “엄마가 구하러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돼!”


  아나이스는 잠시 주춤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지만, 다윈이 한 발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다윈이 갑작스레 꽃밭에라도 간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주차장 벽에 매달려서 죽을 줄로만 알았던 때처럼 말이지?”


  “그래, 딱 그거야!” 검볼이 빙긋 웃었다. “날 믿어, 우린 모두 괜찮을 거야. 엄마는 굉장하다구, 모든지 할 수 있으셔.”


  “‘천리안’도 가지고 있으시겠지?” 아나이스가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말인지 -”


  아나이스가 크게 신음소리를 냈다. “엄마가 ‘어떻게’ 우리를 찾으실 거냐고, 검볼! 그것도 네 굉장한 계획에 포함해놨겠지?”


  신호에 맞춰 스피커들이 소리를 내며 켜졌다. 시간이 되었다.


  “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단다, 워터슨 형제들!” 영국식 발음의 낮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너희 부모님들께 어디로 와야 너희를 찾을 수 있는 지 ‘정확히’ 알려 드렸으니까. 어찌됐건, 그분들이 너희의 잔혹한 결말을 놓치게 하는 건 싫으니 말이야.”


  “뭣 – 누구야 넌?!” 아나이스가 다시 몸을 마구 흔들며 어둠 속으로 소리쳤다. “모습을 드러내!”


  “그렇게 빨리? 만약 내 손으로 개막의 짜릿함을 망쳐 버린다면 내가 어떤 악당이 되겠어? 전형적인 꼬마들이로군. 너희들은 그저 모든 것들이 손에 들어오기만 바라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일말의 감사도 없이 말이야!” 검볼이 어이 없어했다. “하지만 이젠 너희들은 미래를 살짝 엿볼 때가 된 것 같구나...그리고 절망도 말이야!” 너무나 갑작스럽게 불이 켜져 검볼은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그가 눈을 뜨자 아래의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두 개의 판이 스르르 열리며 밑에 있던 수조를 드러냈고, 그 안에는 녹색으로 빛나는 액체가 부글거리고 있었다.


  다윈이 비명을 질렀다.


  “너희의 구원자들이 오면, 너희들은 서서히 산성 구덩이로 내려가게 될 거다! 그 자들이 너희들의 살이 불타 뼈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에 구해 줄 수 있을 것 같나?”


  “음, 어, 아마도.” 아나이스가 말했지만, 눈은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 있게 말하려 했었던 것 같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입을 뗄 떼마다 조금씩 떨려와서 다윈의 훌쩍거리는 소리 너머로 듣기 어렵게 만들었다. “산은 유기 물질을 녹이는 데 약해. 만약 당신이 시체를 처리하고 싶었으면 염기를 썼었어야지. 그런 생각도 못했어?”


  단순히 숨만 돌린다고 하기에는 스피커가 너무 한참 동안이나 조용했다. “당연하지!” 그가 입을 열었지만, 광기가 살짝 넘치게 말하는 바람에 그 말을 믿기 어렵게 했다. “그게 바로 이 산성 구덩이에...상어가 같이 들어있는 이유다! 너희들은 산 채로 먹어치워 버릴걸!” 검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로? 누가 거기 넘어가겠어?


  다윈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뭐, 그 모습이 검볼의 의문에 답이 되었다. “속지 마, 다윈!” 아나이스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 상어 없는 거 안 보여? 저 사람이 허풍 떠는 거라고!”


  “오, 당연히 상어들을 지금 당장 풀지는 않을 거야! 너무... 너무나도 무시무시해서 나조차도 통제 불능이거든, 그래! 파괴만을 위해 존재하는 진정으로 냉혈한 살인마들이지. 내가 그것들을 풀어놨다면 그 정도 거리는 너희를 지켜주지 못했을 거다, 못하지. 그것들이 펄쩍 뛰어올라 당장에라도 먹어치울걸. 우리가 진짜로 시작하기도 전에 말이야!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상어들이 산성 액체 속에서도 숨을 쉬는 모양이지? 아나이스가 정색했다.


  “그래! 그래, 그래, 걔네들은 – 어 – 유전적으로 개조됐거든! 보통 상어들보다 치명적으로 말이야! 괴물이다! 과학이 낳은 끔찍한 괴생물체지!”


  검볼은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이건 너무 황당했다.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뜬 다윈은 여전히 그 말에 낚이려 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이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한 걸까?


  “얘들아, 괜찮아.” 아나이스가 빠르게 말했다. “아플 거야. 하지만 가능한 한 눈을 꽉 감고 있다 보면 경찰이 -”


  때맞춰 이 방으로 향하는 문이 화들짝 열렸고, 경첩 가운데 하나가 그 충격으로 인해 두 동강 났다.


  “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니콜이 그녀와 아이들의 사이를 가로막은 유리 방벽을 깨부수고 나아갔다. 두 눈에 불이 지펴진 채로. 그녀의 시선이 아이들과 구덩이 사이를 옮겨 다니며 잠시 공포에 질렸었지만, 곧 더욱 밝게 불타오를 뿐이었다.


  그녀의 극적인 등장은 안타깝게도 곧이어 불쑥 들어온 리처드에 의해 위엄 있는 모습과는 한참 떨어진 것이 되어 버렸다. 그가 얼굴을 손에 파묻고 너무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검볼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안 돼, 안 돼애애애!!!, 내가 미안하다!!!! 아아,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뒀을까? 난 정말 끔찍한 아빠야!!!” 그가 엉엉 울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내뱉었다. 검볼은 한숨을 지었다. 그가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 모습은 조금 많이 한심해 보였다.


  “엄마 씨! 아빠 씨! 제-제-제발 살려주세요, 제-제발요. 전 죽고 싶지 않 -” 다윈이 진심으로 글썽이고 있었다. 와우. 뭐, 스타일 점수에는 가산점을 줄 만 했다.


  “환영하네! 워터슨 가족!” 스피커가 그의 말을 자르며 울렸다. 니콜이 고개를 홱 돌렸고 검은 표범처럼 거세게 콧김을 내뿜었다. 먹잇감을 찾으며 말이다. “제 때 와 주어서 정말 기쁘군. 네가 이 장면을 놓치는 건 바라지 않았거든!”


  “모습을 드러내, 겁쟁이!” 니콜이 부르짖었다.


  “아쉽지만 그건 어렵겠어, 친구. 하지만 그 대신에 다른 걸 줄게. 그냥 자그마한 제안을 하나 하지.”


  “기계가 위이잉 소리를 내며 켜졌다. 밧줄이 사방으로 요동치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윈과 아나이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고개를 들었고 (그래, 드디어.) 자기들이 무엇에 걸려 있었는지 보았다. 바로 산업용 도르래였다. 천천히, 도르래가 풀리며 그들을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다윈이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아나이스조차도 꽤나 겁을 집어먹은 듯 했다.


  “워터슨, 눈앞에 보이듯 네 아이들은 산성 액체로 가득 찬 구덩이로 점점 내려가고 있네.” 검볼은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몸 전체가 긴장된 채로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기세였다. “하지만 난 네 아이들 모두가 죽는 건 바라지 않아. 오, 이런.”


  “난 네가 선택을 하길 원해. 누가 죽을 지 말이야. 나머지는 모두 살려 주도록 하지.”


  “엄마씨제발절고르지말아주세요제발요제가잘못했어요제가어제파스타맛없었다고했던거진심이아니었어요제발안돼요죽고싶지않아아아아아아”


  다윈의 목소리가 창고에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검볼의 귓바퀴 속을 너무 심하게 파고들어 그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완전 공주님 납셨다.


  “다윈, 그만 해! 우리 모두 괜찮다고!” 검볼이 쏘아붙였다. 다윈은 검볼이 이 자리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눈을 꾹 감은 채로 과호흡을 일으키고 있었다. “엄마!” 검볼은 대신 어머니를 불렀다. “하실 수 있어요! 이것들은 기계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는 건-”


  “나를 데려가.”


  검볼의 심장이 덜컥했다.


  창고가 조용해졌다. 기어가 돌아가는 소리만 빼고.


  “나를 데려가!” 니콜이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다시 소리쳤다. “나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어? 그러면 나를 데려가! 내 아이들에게는 손대지 말고!”


  대답이 없었다.


  검볼은 속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보 같은 얘기였다. 물론 그녀가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닐... 그녀는 괜찮을 것이다. 모든 일이 괜찮을 것이다.


  “아냐... 아냐, 니콜, 그러지 마...” 리처드가 간신히 소리를 쥐어짜냈다.


  산성 구덩이가 더욱 가까워졌다. 아나이스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얼굴이 갑작스레 심각해졌다.


  “대답해-!!!”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군요. ...니콜 씨! 선택은 당신의 자녀 가운데에서만 가능하답니다!”


  검볼은 무의식적으로 참고 있었던 숨을 내뱉었다.


  “나를 데려가!!!” 리처드가 눈물을 쏟으며 고함을 쳤다. “내가 아이들을 내버려둔 채로 소시지를 쫓아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야! 내가 미안해, 니콜. 이건 모두 다 내 탓이야!!!”


  리처드가 흐느끼는 동안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자네, 어... 내가 ‘자녀들’ 가운데 고르라고 했던 얘기는 들었겠지, 그렇지 -”


  다윈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제가더큰어항사달라고해서죄송해요정말로필요했던건아니었어요죄송해요아무것도안주셔도돼요제가다잘못했어요제발시키시는건뭐든지할게요그냥제발요제발절버리지-”


  “난 그 누구도 고르지 않아!” 니콜이 소리쳤다. 그녀는 격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지만, 특수 아크릴 벽에 그저 반동으로 튕겨져 나올 뿐이었다. “그냥, 그냥 내 손으로-”


  검볼의 심장이 너무 강하게 뛰어서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가슴을 부수고 나오려는 것만 같았다. 놀라웠다, 그는 자신이 정말 무서워서 그런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저 반사적인 반응일 뿐이었다. 그렇다. 그는 괜찮았다.


  니콜은 미친 듯이 주변을 쏘아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망설임에 몸이 굳어버린 걸까? 검볼이 남은 시간을 헤아리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거리는 좀 됐지만...이 정도로는 충분치 못했다. 긴급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엄마, 왼쪽 벽에-”


  “여기서 나가요, 엄마!” 아나이스가 그의 너머로 소리쳤다. “이건 산이에요, 염기가 아니라구요! 그냥 경찰을 불러요, 저희는 그 때까지 살아 있을 테니까요!”


  니콜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 아냐, 그렇게는 못 해!” 검볼은 처음으로 그녀가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시금 그녀의 눈길이 필사적으로 이곳저곳을 쏘아보았다. 아이들에게로, 구덩이로, 다시 원래 자리로 말이다.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갑자기 왼쪽으로 돌진해 두꺼운 지지대에 주먹을 꽂으며 분노로 울부짖었다. 그녀는 치고, 또 쳤다. 쇠가 찌그러지며 소리가 울렸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검볼이 어이없어 했다. “그 반대쪽이요!” 그는 그녀의 시점에서도 이를 고려했었어야만 했다.


  “안돼안돼안돼안돼 -” 젠장, 다윈이 너무 시끄러웠다. 그는 그녀가 들을 수나 있을 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니콜이 지지대를 다시 내려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겨우 몇 초 동안, 잠시 멈추어 얼굴을 훔쳤다. 그런데... 저건 눈물이었을까? 아니다, 그녀는 그것보단 더 강했다. 검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그저 땀을 닦아낸 것일 터였다. 그녀는 이 현장 너머로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며 격벽을 힘껏 밀었다. 그들은 이제 그녀와 거의 비슷한 높이까지 내려왔고, 검볼은 액체가 콸콸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 그냥 ‘경찰’을 불러요!” 이젠 아나이스의 목소리가 찢어져 가고 있었다. 유리처럼 연약한 고음이었다.


  니콜은 한걸음 물러서서 격벽을 향해 날카로운 발차기를 날렸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물러서고는 격벽에 몸을 날려 쾅 하고 부딪혔다. 그녀는 착지하고 나서 곧바로 격벽에 주먹을 날리고, 날리고, 또 날렸지만 특수 아크릴 벽의 떨림은 때릴 때마다 점점 줄어들었다. 검볼은 이제 그녀가 분명히 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심장 박동이 무거워져 갔다.


  눈물로 젖은 그녀의 눈이 검볼과 그의 형제들 사이를 차례로 재빠르게 오갔고, 손은 여전히 무의미하게 유리를 긁고 있었다.


  “엄마, 엄마 ‘왼쪽’의 벽-”


  “죽고싶지않아죽고싶지않아죽고싶지않아-”




 - 아나이스는 몸을 웅크리고 이를 악물었다. -


 - 리처드는 더더욱 크게 울었다. -


 - 니콜은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부여잡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엄마-!”


  “검볼을 데려가!”


  다윈이 비명을 멈췄다.


  리처드가 울음을 그쳤다.


  모든 것들이 조용해졌다.


  검볼이 그의 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도 공포에 질린 채 마주보았다. 손을 입에 가져간 채로,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어-음.” 잠시 뒤에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렸다. “음. 정말, 어, 정말로... 음, 자-잠깐, 아니, 그러니까... 으-음,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아서 말이야... 어...”


  레커 박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적막으로 변했다.


  “...어, 저기?” 아나이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도르래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어! 뭐라도 좀 해봐!!!”


   “어 – 어 – 음.”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미안, 그냥 – 잠깐만, 내가 -”


  유리 격벽이 벽 속으로 들어갔고 도르래에 걸린 밧줄도 풀렸다, 모두 한 번에. 수조 속으로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떨어지며 검볼은 비명소리를 들었다. 충격에 대비해 눈을 감으며 말이다.


  무슨 이유인지, 니콜의 헉 소리에 비명소리가 모두 끊겼다. 검볼이 고개를 들자, 그녀가 이미 수조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첨벙 소리를 내며 안착했지만, 조금도 느려지지 않은 채로 모터보트처럼 물살을 가르며 발톱으로 재빠르게 그의 밧줄을 갈랐다.


  멀리에서, 검볼은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던 소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채었다. 다윈과 아나이스가 비명을 그친 것이었다. 검볼이 발을 딛고 서자, 니콜도 가까스로 이를 눈치 챈 듯했다. 아마도 산에 적셔졌을 자신의 옷을 살펴보며 말이다.


  “이건... 산이 아니에요.” 아나이스가 말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다, 니콜이 물살을 헤치며 그녀의 밧줄을 풀러 오자 침묵은 끊어졌다. “이건... 이건 그냥 ‘물’인데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익사할 정도로 깊지도 않았다. 아나이스의 가슴 높이까지 겨우 올라오는 정도였다. 그 점이 중요했었다.


  “어-어...” 롭이 스피커 너머로 중얼거리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어, 심리학적 실험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시다시피, 어,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음, 해피엔딩이라고나 할까요?”


  니콜이 멈추었다. 검볼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힘 풀린 손가락 사이로 다윈을 휘감았던 밧줄이 흘러내렸다. 다윈은 필사적으로 어머니를 부둥켜안고는 아무 것도 보려 하지 않았다.


  “심리학적 실험?” 니콜이 말했다.


  검볼은 그의 다리를 둘러싼 물보다도 더더욱 심한 한기를 느꼈다.


  그는 지난 세월동안 그녀가 화가 났었던 때들을 모두 돌아보았다. (대부분 그가 저지른 무언가 때문이었기에 반성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의 기억조차도 지금의 목소리와 같았던 경우는 없었다. 조용했다, 그렇지만 왠지 그 조용함이 그 목소리를 훨씬, 훨씬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스피커로부터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했다. 천천히, 그녀는 일어나 수조 변두리로 헤쳐 나갔다. 다윈을 아기처럼 끌어안고서 말이다. 검볼은 리처드가 그 곳에 있는 걸 보았다. 그는 분명 어느 틈엔가 서성였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다윈을 넘겨주었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니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올라왔다. 아나이스가 무심한 듯이 헤엄쳐 갔고, 수조 밖으로 몸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보았다.


  “어, 검볼? 괜... 괜찮아?”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렵지 않았다. 별 일 아니었다. 그는 다윈이 왜 저렇게 속상해 하는 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니콜은 여전히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방 한쪽의 변색된 패널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내 왼쪽에 있는 벽...”


  검볼은 그녀가 팔을 불쑥 날려 약한 합판을 부숴 산산조각 내자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녀는 버튼 아래의 표지를 쳐다보며 다가섰다.


  ‘도르래: 비상 정지’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마침내 니콜이 고개를 돌려 텅 빈 바닥 건너편을 보았다. 검볼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 놈은 분명 제어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겠지, 그렇지?”


  아나이스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머뭇거렸다. “오, 어, 네. 분명히요. 어...” 그녀는 약간 기침소리를 내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기요.” 그녀가 잠시 뒤 그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문이 어두워요. 무슨, 음, 일방향 유리 같은 건가 봐요. 하지만, 놈은 분명 저 곳에 있어요.”


  니콜이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갈 수 있지?”


  아나이스의 목소리가 점점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만약 이곳이 보통의 창고들과 같다면, 틀림없이 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있을 거예요. 뒤쪽에요.”


  니콜의 발걸음이 로켓처럼 빨라졌다. 무언가가 마침내 검볼이 움직이도록 박차를 가했고, 그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자, 잠깐만요.” 그가 힘겹게 불렀다. “무, 무슨 짓을 하실 건데요?”


  니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코너를 돌았고, 검볼은 그녀가 문을 열어젖힐 때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롭이 한 손을 뒷문에 올린 채 그 곳에 얼빠진 듯이 서 있었다. 그는 망설였다.


  니콜은 그렇지 않았지만.


  검볼은 그녀의 움직임조차 볼 수 없었다. 그가 소리를 지르려 했을 때, 롭은 이미 문에 부딪혀 경첩을 쾅 하고 부수고 그 너머로 날아갔다. 그는 바깥의 보도로 떨어져 가슴을 부여잡고 헐떡거리고 있었다.


  “엄마! 뭐 하시는 거예요?” 아나이스의 목소리였다. 검볼은 다른 가족들이 올라온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니콜은 냉혹한 심판자로서 앞으로 걸어가 숨 가쁜 소년의 옷깃을 움켜잡고 그를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사람의 ‘심리학적 실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줘야 할 것 같구나.”


  “잠깐만... 검볼, 저 사람은...” 다윈의 목소리, 약했다. 검볼의 그의 바로 옆에 서 있지 않았더라면 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검볼이 황급히 그를 쳐다보았다. 리처드가 여전히 그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지만, 그 손은 멍하니 움직일 뿐이었다. 리처드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잠깐만요.” 롭이 숨 가쁘게 말했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제가 계획한 게-”


  니콜의 손바닥이 총알처럼 튀어나가 그의 얼굴을 너무 세게 후려쳐 그의 손상된 피부는 스스로를 재구성해야만 했다. 검볼은 새된 비명을 질렀고, 아나이스가 움찔하는 모습을 보았다.


  “넌 내 가족에게 상처를 줬어.” 검볼은 그녀의 다른 쪽 손을 들어 롭의 손목을 꽉 붙잡아 찌그러뜨리는 모습을 공포에 질린 채 지켜보았다. “이제, 난 네가 ‘영원히’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줄 거야.”


  “엄마...?” 아나이스가 말했다.


  롭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통과 공포와 배신감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검볼은 말하고 싶었다. 그만하라고.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고 몸조차도 움직일 수 없었다. “뭐 하는 거야?! ‘검볼’-”


  니콜이 손목을 휙 튕기자 롭의 팔에서 소름끼치는 우두둑 소리가 났다. 그는 비명을 질렀다.


  “내 아들의 이름을 다시 입에 올리는 순간 네놈은 내 손에 죽게 될 거다.”


  “그러지 말아요!” 검볼이 단숨에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였는지 조차도 알기 어려웠다. 정말 날카롭고도, 두려움과 연민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맞아요, 엄마. 죽이면 안 돼요!” 아나이스가 소리쳤다. “감옥에 가게 될 거예요!”


  돌아보지 않은 채 니콜은 롭의 손목을 놓았다. 그를 보내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잘 된 일이었다. 괜찮을 것 -


  곧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이 빛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검볼은 그녀가 발톱을 꺼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찰들은 이 현장을 보고 야생동물의 짓이라고 할 거란다.”


  “안 돼요! 제발!” 롭이 미친 듯이 가는 팔다리를 휘저어댔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혼란과 공포, 그리고 증오에 찬 시선으로 검볼을 다시 쳐다보았다. 검볼은 몸을 웅크리고 죽고만 싶었다. “이건 거래의 일부가 아니었잖아!!!”


  니콜의 손이 다시 튀어나갔다. 그녀의 발톱이 너무 깊게 파고들어 검볼은 픽셀들이 피처럼 튀기는 모습을 보았고, 픽셀들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사라졌다. 롭이 비명을 질렀다.


  니콜은 이제 분노로 떨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분노로 더듬거리고 있었다. “감히. 감히. 감히 내 가족이 이, 이 계획에 관여했다고 말하려 들다니.”


  그녀가 그를 다시 후려쳤다.


  검볼은 필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나이스는 정말 이 모습을 내버려 두려는 걸까? 그녀는 그저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다윈 – 다윈은 롭이 해칠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라면 분명히 그녀가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냥 눈을 감은 채로 웅크려서 세상모른 채였다. 아빠 – 아빠는 어른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라면 이 상황이 잘못됐다는 걸 알 터, 막으려 할 것이다. 그렇지? 하지만 그는 그저 무력하게 훌쩍일 뿐이었다.


  검볼은 다시 한 번 니콜의 발톱이 피를 튀기며 찢어발기는 소리를 들었고, 마치 그녀가 자신을 때리는 듯 움찔거렸다. 정말로 그랬으니까. 이 일들은 모두 그의 탓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일을 망쳤고 이제는 그 대가로 롭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의 잘못 때문에. 그는 이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는 숨을 쉬려고 헐떡거렸지만 아무리 거칠게 몰아쉬려고 해봐도 충분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들이 그를 짓눌렀고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사실이에요!!!” 검볼이 소리 질렀다.


  그는 니콜이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 들리는 것은 오직 롭의 신음과 훌쩍임뿐이었다.


  검볼은 천천히 눈을 떴지만, 여전히 들 수는 없었다. 그는 떨며 어두운 보도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 이 모든 일이, 다 제 아이디어였어요. 제가 끌어들인 일이라구요. 그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 부디, 제발 그러지...”


  긴 침묵이 이어졌다. 심지어는 롭조차도 조용해졌다.


  “...뭐?” 아나이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비난이었다. 질문이 아니라. 그 말에 서린 독기에 검볼은 심장이 부서질 듯 했다. 그는 무릎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느꼈고, 울지 않으려 애썼다.


  니콜의 목소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아가, 이 사람을 지키려고 거짓말 할 필요는 없단다.” 그녀는 다시 평소의 목소리를 쓰고 있었다. 마치 집에서 평범히 대화하듯, 방금 그보다 별로 나이도 많지 않은 소년을 반죽음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팬 적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아니에요. 전 오빠의 말을 믿어요.” 아나이스가 쏘아붙였다. “이건 ‘틀림없이’ 오빠나 할 법한 짓이라구요.”


  “...아냐.” 다윈이 말했다. 검볼은 망설이듯 고개를 슬쩍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럴 리 없어... 나한테... 나한테 말하지 않고서는 말야.” 다윈이 울음으로 붉게 물든 눈을 그에게 향했다. “...맞지?”


  검볼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말해 줘, 검볼... 말해 달라고... 네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해 달라고!”


  검볼은 롭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검볼은 고개를 들어 그가 허둥대며 달아나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필사적이라 그는 자꾸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미끄러졌고 부러진 팔목으로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끔찍하게 뒤틀려 고통에 울부짖게 될 뿐이었다. 그는 팔목을 가슴에 끌어안으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울 것만 같은 얼굴과 비명을 지를 것만 같은 얼굴이 반씩 섞여있었다.


  “그래.” 그가 내뱉었다. “그래, 검볼이 모든 일을 꾸몄었다고! 이 버려진 창고를 발견하고, 내 대사를 써 주고, 그리고 기계장치들을 준비하도록 내게 돈까지 줬다고!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


  검볼은 토할 것만 같았다. “롭, 안 돼-”


  “저 아이가 말하길 ‘당신이 자길 충분히 사랑해 주지 않는 것 같다더군!’” 롭이 괴로운 웃음을 내질렀다. “저 아이가 생과 사를 가르는 상황이라면 당신들을 하나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이 일이 자기 가족의 유대를 재확인시켜줄 거라고 했다고!”


  “그-그렇지 않아...”


  롭은 붙잡고 있던 손목을 내리고는 워터슨 가족을 향해 비난하듯 손가락을 날렸다. “와, 너 진짜 ‘제대로’ 말아먹었구나, 엉? 하! 여태까지,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었던 거야! 네가 스스로 네 모든 걸 망친 거라고! 당신들은 모두 미쳤어! 미쳤다고!”


  그 말과 함께 그는 돌아서서 밤 속으로 내달려 사라졌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검볼은 다시 자신의 발을 내려다봤다. 그는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새까만 보도가 그 자신과 모든 것들을 삼켜버려 모든 일들을 그저 한 순간의 악몽으로 만들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밤공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었고, 무겁고 거친 숨은 그의 마음대로 쉬어지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길 원했던 건 아니었었다.


  그는 아나이스가 날카롭게 입을 떼는 모습을 보았지만, 니콜이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집으로 가자. 맞은편에 차가 있어.”


  그녀의 발걸음이 뚜벅뚜벅 거리를 가로질렀다.


  “뭣 – 잠깐, ‘잠깐만요.’” 아나이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오빠를 이렇게 그저 심판대에서 내려 버리시면 안 된다고요!” 검볼이 움찔했다. 니콜의 발걸음에는 머뭇거리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번에 오빠는 너무 큰 사고를 쳤어요! 아니 – 오빠는 오랫동안 그래 왔어요! 이번에 단호하게 혼내지 않으신다면 오빠는 절대로-”


  날카로운 헉 소리와 함께 아나이스의 말은 멈추었다. 그 소리가 마침내 검볼의 고개를 번쩍 들게 했다. 니콜이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채 그녀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아나이스는 죽음 그 자체를 마주한 듯 온 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집으로 가자고 했잖니.”


  니콜은 돌아서서 걷기를 계속했다. 아나이스는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네, 엄마.” 하지만 이는 검볼에게 타오르는 눈빛을 보내고 나서의 일이었다. 검볼은 뒤로 몸을 움찔했다.


  “어... 자-자아, 검볼, 어서 가자.” 검볼은 그의 팔위에 리처드의 손이 올라온 것을 느꼈고, 자신을 끌고 가도록 두었다. 그는 어렵게 고개를 들었다. 다윈은 다른 쪽에서 다시 걷고 있었다. 특히 그를 쳐다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검볼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모두들 차에 올라탔다. 검볼은 무의식 속에 안전벨트를 맸다. 부릉 소리와 함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하는 동안 다들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아나이스가 침묵을 깼다. “믿을 수가 없어... 아니, 아냐. 믿을 수가 ‘있어.’ 그게 가장 끔찍한 부분이야.” 그녀가 곧장 앞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난 오빠가 ‘그’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었길 바랬어!”


  “지금은 아니야, 아나이스.” 니콜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럼 언제요?!” 아나이스가 으르렁댔다. “엄마는 지금 오빠를 너무 지나치게 봐 주고 계세요. 오빠는 자기가 어떤 일에서든 내뺄 수 있다고 생각한다구요. 바로 엄마가 절대로-”


  리처드가 잽싸게 돌아보았다. “엄마 말 들으렴.” 순간 검볼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는 그렇게 엄한 표정을 아버지에게서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딱딱했고, 찡그린 눈살이 평소 그의 부드러웠던 얼굴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검볼은 피가 얼어붙는 듯 했다. 아나이스는 주눅 든 채 고개를 숙였다.


  검볼은 눈길을 다윈에게로 옮겼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그 이후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차도에 차가 세워졌다. 차는 덜컹거리며 멈추었다. 검볼은 니콜이 차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가 차에서 내렸다. 검볼은 기계처럼 그들을 뒤따랐다.


  그러고 나자, 바보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의 다리가 문턱 너머를 지나가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말,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여긴 집이었다. 안전하고, 평범한 곳인데도, 왜 그는 이곳에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밤새 거기 있을 거니, 검볼?” 리처드가 미소를 띤 채 말했지만, 말끝에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럼에도 검볼의 다리에 걸린 주문을 풀기에는 충분했다. 검볼은 알아듣기 어려운 무언가를 웅얼거리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걷는 다기보단 쓰러지려는 것 같았다.


  집안은 어두웠다. 니콜은 불을 켜려 하지도 않고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 그녀는 벽에 손을 짚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주 조금.


  그리고 그녀는 쾅 하고 벽을 주먹으로 내리쳐 검볼의 꼬리가 부풀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가 모두들 앞에서 모든 일들에 대해 책임을 물을 터였고, 그는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늦었구나.” 그녀가 여전히 얼굴을 돌린 채 조용히 말했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이 있단다. 배고프면 먹으렴.”


  “‘이제는’, 얘기할 수 있겠죠?” 아나이스가 말했다.


  “아침에 말이다, 아나이스. 난... 난 좀 누워야겠구나.”


  그들은 그녀가 계단을 올라 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작은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


  리처드가 손뼉을 쳤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다들 펄쩍 뛰었다. “좋아, 얘들아!” 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먹고 싶니? 아니면 재워 줄까?”


  아나이스가 황당해 했다. “깨 있고 싶지만, 아침까지는 ‘분명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그러니까 좋아요, 다 잊어버리고 잠이나 자죠, 뭐.”


  리처드가 그녀에게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엄마가 많이...” 그가 잠시 멈추었다. 할 말을 없어 어색한 침묵의 한숨만이 이어졌다. “내 말은, 네 엄마가 많이 지치셨단다, 아나이스. 아침이 되면 다들 기분이 좀 풀릴 거야.”


  “그렇겠죠.” 아나이스의 목소리에는 그다지 믿는 듯한 구석이 없었다. 그녀는 검볼을 거칠게 밀쳐 내고는 낼 수 있는 가장 큰 발소리로 계단을 쿵쿵거리며 올라갔지만, 그녀가 조그마한 발로 낸 그 소리는 그저 보통 사람들의 걸음소리에 불과했다.


  검볼은 기다렸지만, 아무도 움직이려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또한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시야 한 구석에서 리처드가 두 손을 맞붙잡고 있는 걸 보았다.


  “그, 그래, 어,” 그가 멋쩍은 듯 우물거렸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아무도 답이 없었다. 검볼은 잠시 얼어붙었지만, 결국 용기 내어 고개를 돌렸다. 다윈은 냉정하게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저-저, 음...” 검볼이 목을 가다듬었다. “우리도 그냥 가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여전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볼은 서투르게 손을 뻗어 다윈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 너도... 같이 갈 거지, 친구?”


  “왜 말 안 했던 거야?”


  검볼은 숨이 턱 막혔다가, 가쁘게 홱 내쉬었다. “나-나-난 그저, 그건, 내 생각에, 네가, 그냥, 난...”


  ...그리고 검볼은 다시 숨이 막혀왔다.


  다윈은 검볼을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만 돌아섰다. 그의 눈길이 곧바로 멀리 옮겨갔지만, 그는 여전히 검볼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검볼이 그의 상처와 분노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검볼은 심장을 토해내고 싶었다.


  “넌 한 번도 나를 빼 놓은 적이 없었어. 한 번도. 얼마나 위험하건, 또 미친 짓이건, 또, 또, 내가 얼마나 태클을 걸던, 넌 언제든 내게 말해 줬잖아, 언제든! 대체 왜...” 다윈이 훌쩍거렸다. 그리고 분노에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일렁였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날... 믿지 못해서?”


  검볼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생각해내려 애썼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너도 이 경험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어쩌면, ‘응.’ 그는 죄책감이라는 비수에 찔린 채 인정했다. 그는 다윈이 그에게 이에 대해 말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과의 말들은 마지막을 제외하곤 그저 그를 더 바보 같고 찌질해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뭔가’ 말을 꺼내려고 숨을 들이켰지만, 말들은 그저 목에 걸려버릴 뿐이었다. 그는 다시 입을 떼었다. 자신의 가냘파진 숨결을 눈치 채며, 마침내 소리를 내었다. “그게... 아니야.”


  리처드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검볼은 갑작스레 그의 어렴풋한 존재를 눈치 채었다. 그는 그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으-음, 우리 그냥 서로 잘 자라고 해 주는 게 어떨까, 얘들-”


  “그러면 왜?!” 다윈이 폭발했다. 검볼과 리처드는 진짜로 튕겨나간 듯이 뒤로 움찔했고, 다윈은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짓을 대체 – 대체 왜 한 거야?!” 그는 이제 격노의 손짓을 하고 있었다. 검볼이 그를 쳐다보듯 그 또한 그를 노려보았다.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이었는지 알기나 – ‘알기나’ 하는 거-”


  검볼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만, 이제 그만 해, 어! 아빠가 우리를 구해 주시러 오도록 만들었던 때랑 다를 것도 없잖-”


  “아니, 달라! 네가 말해주지 않았었으니까!” 다윈은 아마 집 안 사람들을 모두 깨울 만큼 크게 소리치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2층에서 짜증내는 소리가 검볼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 세상에.” 아나이스의 목소리였다. 검볼은 움찔하고는 몸을 웅크렸다.


  “얘들아, 제발-”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검볼이 받아쳤다. 필사적이고, 높고도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너도 봤잖아. 다 가짜였었다고, 넌 괜찮았던-”


  “난 내가 ‘죽을 줄’ 알았다고!!!!!!”


  검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윈이 바들바들 떨며 그의 앞에 바짝 다가섰다. 눈물이 얼굴에서 강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검볼이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왜-”


  다윈이 난간에 손을 내리치자, 검볼의 입이 덫처럼 닫혔다. “왜? 왜??? 입장 바꿔 생각해 볼까? 왜 너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아-” 그는 검볼의 말에 대한 반응으로 비꼬아 말을 하려 했지만, 과호흡이 너무 심해서 튀어나온 말은 앞뒤가 안 맞았고 그저 떨리는 목소리뿐이었다. “나는 검볼이구 날 사랑해주고 뭐든지 해 주는 멋진 가족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왜냐하면 나는 – 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얼간이라 내 동생들을 죽음의 함정 속으로 밀어 넣은 다음에 엄마한테 누굴 죽게 할 지 고르게 둘 거야. 어쨌든, 어쨌든 말이 되는 일이니까!”


  검볼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시 숨이 막혀왔다.


  리처드가 어색한 표정으로 다윈을 달래며 위층으로 보내려 했다. “다윈, 음, 그 정도면 된 것 같구나. 이제 그만-” 다윈이 그를 밀쳐내었다.


  검볼의 바보 같은 혀가 리처드가 계속 말을 이어나가려는 걸 방해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자신의 고함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넌 ‘선택’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이러고 있잖아. 그래서 난 네가 뭐가 불만인지 알 수가 없어!”


  “그럼 ‘이건’ 뭔데?” 다윈이 이제 온 가슴을 담아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비난의 손가락을 날렸고 검볼은 자신을 정말로 때리려는 줄 알았다. “넌 아직도 여기에 있잖아!”


  검볼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윈은 주먹을 움켜쥐고 발로 바닥을 세게 울려대며 눈을 굳게 감았다.


  “네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다윈, 그만 하면 됐다!” 리처드가 검볼이 여태껏 본 적 없던 속도로 달려들어 다윈을 거칠게 팔로 붙잡았다. 다윈은 저항했지만, 이번에는 리처드가 강철과도 같이 굳게 붙들고 있었다. “네 형이랑 같이 못 가겠다면, 여기 남아 있어도 돼!”


  검볼은 바닥을 쳐다보았다.


  “네? 네?!” 다윈이 지지 않고 매섭게 검볼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다 ‘검볼’ 탓인데 왜 제가 여기 남아 있어야 되는데요?!”


  리처드의 얼굴은 냉정했다. “네 형한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니까, 다윈!”


  “괜찮아요.” 검볼이 중얼거렸다. 버둥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제 – 제가 여기서 잘게요. 괜찮아요.” 그는 잠시 멈추었다. 고개는 들지 않았다. “어찌됐건 다윈은 어항, 어항이 필요할 테니까, 아빠가 그걸 들고 내려오셔야 될 거예요. 음... 제가 남을게요. 괜찮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좋아!” 다윈이 결국 소리를 쳤다. 하지만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이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그는 리처드의 품 안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갔고, 그의 (그들의) 방문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쾅 닫아버렸다.


  남은 둘은 그저 그곳에 잠시 서있었다. 리처드는 머뭇거리며 검볼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려 했지만, 검볼은 손길로부터 떨어져 옆에 있는 소파로 걸어가 볼품없이 풀썩 쓰러졌다.


  그는 눈을 꼭 감고 자려고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자 그는 불편할 정도로 그가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깨달았다. 따뜻한 여름밤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불 없이 자는 건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꼬리로 몸을 감싸 보았지만, 충분치 못했다.


  검볼은 뭔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걸 느끼고 곧바로 긴장한 채 눈을 부릅떴다. 그는 리처드가 그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움찔하는 바람에 리처드는 손을 재빨리 치웠다. 검볼이 움직이지 않자, 그가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검볼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검볼을 완전히 감쌀 수 있도록 말이다.


  리처드는 어색하게 서성거리며 잠시 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 “괜찮을 거란다.” 그가 중얼거렸다. “다윈도 진심은 아니었을 거야.” 검볼이 눈길을 돌렸다. “아침에는 모두가 기분이 좀 풀릴 거란다. 두고 보렴.”


  검볼은 몇 초간만 더 조용히 기다렸다. 리처드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검볼은 자신이 잠에 들었던 건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창문 너머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바보 같은 일이었지만, 빛이 그의 기분을 조금은 낫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지글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부엌에서 들려오는 걸 들었다. 옅은 팬케이크 냄새를 맡은 그의 코가 실룩거렸다. 어쩌면... 아침밥이 벌써 준비된 걸까? 어쩌면... 일어나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는 카펫 너머에서 뚜벅뚜벅하는 발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았다. 발걸음이 멈추자 그의 심장이 가슴 속에서 쿵쿵 뛰었다. 그들이 그를 보면 소리를 지르고 쫒아낸 다음에 -


  발걸음이 이어져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몇 초 뒤, 그는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가능한 한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으-음...” 다윈의 목소리다! 검볼의 귀가 자신도 모르게 쫑긋거렸다. (망할, 망할, 멍청한 이놈의 본능! 그는 이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


  “아침이 곧 준비될 거란다, 아가. 팬케이크라면 다들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괜찮은 것 같니?” 그녀의 목소리는 낭랑한 곡조를 이루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 네.” 검볼은 다윈의 말에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너무도 조용했다. “그냥... 음...”


  숨을 돌리는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검볼은 그가 말을 이어나가지 않길 바랐지만, 다윈은 입을 열었다. “...절 고르지 않아 주셔서 고마워요.”


  잠시 동안 지글거리는 소리만이 이어지다, 니콜이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도 고르고 싶지 않았었단다, 다윈.” 이젠 그녀의 목소리에서 생기가 사라졌고,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알아요, 알아.” 다윈이 급하게 둘러댔다. “그래도, 그래도 그냥, 음...” 다시 침묵의 숨결이 이어지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침묵이 깨졌다. “참, 참 바보 같은 일이죠. 저도 알아요. 그냥... 네, 그 모든... 일이, 정말로, 음, 영화나 TV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잖아요, 그죠? 그리고, 음... 제가 거기 있었을 때... 제가 거기 있었을 때, 제 머릿속에 가득했던 건...”


  횡설수설하던 다윈의 목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그가 숨을 들이키고서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입양된 아이가 항상 죽는다는 거였어요.”


  부엌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검볼은 가까스로 펄쩍 뛰려는 몸을 붙들고 있었다. 이어서 다윈이 작은 “우읍” 소리를 냈고, 곧바로 니콜이 말을 꺼냈다. “아가, 너도 우리가 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니. 정말 미안해, 절대 그런 생각 할 필요 없단-”


  “알아요, 저도 안다구요!” 다윈이 어색히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까 말했듯이, 바보 같았던-”


  “아니, 아니, 아냐, 그렇지 않아. 바보 같은 생각이 아니란다, 아가. 어떤 얘기든지 마음껏 말해 주렴, 약속할게, 정말 미안-”


  “알겠어요, 알겠어!” 이번에는 다윈의 웃음이 조금 더 진심에 가까웠다. “저도 사랑해요, 엄마 씨. 이제, 어, 놓아 주셔도 돼요.”


  검볼은 발을 끄는 소리와 서로 뭔가 중얼대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얘기인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 “방금 그 말이요, 음... 그냥... 제겐 정말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어요.” 이윽고 다윈이 말했다.


  그는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검볼은 팬케이크가 뒤집히고, 다시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한테 대체 무슨 TV 프로그램을 보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구나.” 니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은근히 힐책이 섞인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장난기가 있었다. 다시금 평소처럼 말이다.


  다윈이 크지만, 죄책감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 하, 아마도요.”


  “이제, 네 형에게 뭔가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렇지?”


  “...네, 엄마 씨.”


  뚜벅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가까이로 다가와 그의 앞에서 멈추었다. 검볼은 아직 자고 있는 척 하기 위해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져 갔다. 검볼은 다윈의 숨소리와 종종 앞뒤로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가 진짜로 검볼을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는 건 분명했다.


  그에게는 그 편이 나았다. 검볼은 옆으로 돌아누웠다. 여긴 편안했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그가 잠들고 다시 일어나면 다윈이 전부 잊어버려 그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게 되고, 그렇게 이 일에 대해 영원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평생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지.


  “어... 검볼? 자?”



  검볼이 몸을 웅크렸다.


  조금 뒤에 말이 이어졌다. “...나랑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괜찮아. 내-내가 정말 못되게 굴었고 정말 미안해. 나-난 네가 정말로, 어, 주-죽길 바랬던 건 아니었어...”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미안해, 뭔가가 내, 내 속을 갉아먹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야. 나도 네가 날 싫어할 걸 알아, 하지만-”


  “그만 해.” 검볼이 말했다.


  그가 마지못해 일어났다. 어깨에서 이불이 흘러내렸다. 그는 주먹으로 이불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말 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해서는 안 됐-”


  “신경 안 써.” 검볼이 웅얼거렸다. “괜찮아.” 자기도 모르게 그는 눈가에 물이 고이는 걸 느꼈다. “어찌됐건 네가 옳았으니까. 너에게 말해 줬어야 했어. 네가 어떤 기분이었을 지 생각해보지 않았어. 난...” 그는 잠시 멈추고는 주먹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생각을 안 했어.”


  검볼은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건 경고에 지나지 않았다. 다윈이 달려들어 그를 팔로 감싸 꽉 껴안고서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검볼은 깜짝 놀라서 몸이 굳었지만,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


  “괜찮아, 용서해 줄게!!!” 다윈이 울부짖었다. 검볼은 마침내 얼굴을 돌려 그를 마주했다. 그의 입술을 떨리고 있었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으윽. “너, 넌 내 형제일 뿐만 아니라, 내 ‘최고의 친구’야!!!” 그가 말했다. “그리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해!”


  “어...그래.” 검볼이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어색히 다윈에게 팔을 감쌌다. “나도 사랑해, 친구.”


  다윈은 잠시 동안만 더 훌쩍이다 마침내 그를 놓아주었다. 그는 눈물을 닦고는 다시 검볼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검볼은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널 빼놓지 않을게, 알았지? 약속해.”


  “아-아냐, 괜찮아, 검볼. 진심은 아니었어. 너도 가끔 혼자 있고 싶은 거 알아.”


  검볼은 다시금 이불을 움켜쥐었다. “그건...


  누군가가 뒤에서 코를 풀었다. 그것도 매우 크게. 검볼은 말문을 잃은 채 일어서 주변을 휙 돌아보았다.


  “아니, 쫌, 아빠!” 그가 소리쳤다. “여태까지 지켜보고 계셨던 거예요?!”


  리처드는 휴지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액체가 흘러내려 흉한 모습을 자아냈다. 그는 훌쩍이고는 눈물을 닦았지만, 눈물로 얼굴을 칠할 뿐이었다. “나-나-나는 그냥 느어, 너희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가 울부짖었다. “다시 모든 일들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기, 기뻐!”


  날카로운 박수가 곧바로 그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 이는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되었다. 천천히, 그리고 비꼬듯이. 검볼은 그 출처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요, 참으로 아름다운 공연이네요.” 아나이스의 목소리에서 독기가 흘러내렸다. “너무 아름답고도 ‘참으로’ 자연스러웠어요. 이제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네요. 그게 ‘가장’ 중요하게들 여기시는 문제니까요. 이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검볼이 모든 일로부터 용서받았고 아무런 교훈도 깨우치지 않았죠. 그도 그럴 게 매번 이런 식이었고, 정말로 늘 그렇게 다 괜찮다며 넘어가 버렸었으니까요.”


  검볼이 눈을 내리깔았다.


  “아나이스, 그만-” 리처드가 말했다.


  “아침 먹으렴, 얘들아!” 니콜이 불렀다. 유독 더 큰 목소리로.


  “오, 아침밥!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끼지!” 리처드가 갑자기 꽃밭에라도 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뉴가 뭐야, 자기?”


  “팬케이크!”


  “소시지도?!”


  “그냥 팬케이크만이에요, 자기.”


  “우우우...”


  검볼은 누군가가 팔을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들자 다윈이 평소처럼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어서, 검볼. 나 배고프다고!”


  검볼은 거절하려 했지만, 그의 배가 꼬르륵거렸고 갑자기 순간 자신 또한 얼마나 배가 고팠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윈을 따라 식탁으로 향했다.


  그는 잔등에 아나이스의 시선이 비수처럼 꽂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어머니 바로 옆자리에 앉아 꼿꼿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다윈이나 아나이스를 보아야만 했기에 그는 그저 자신의 그릇을 내려다보며 그것만이 온 세상이라고 여기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는 인정했다. 팬케이크에는 그가 늘 좋아했던 토핑인 따끈한 버터와 메이플 시럽이 올라가 있었다. 그는 다른 가족들이 이미 먹어 치우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배가 다시금 꼬르륵거렸고, 그는 멍하니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어 칼질을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포크를 입으로 몇 번 옮겼다.


  결국, 그는 이 소리를 들었다. “괜찮니, 아가? 음식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구나!”


  그는 얼어붙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쳐다볼 수 없었다.


  “먹고 싶지 않다면 다른 걸 만들어 줄 수도-”


  “아뇨. 괜찮아요!” 그가 황급하게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접시에 꽂혀 있었다. “잠시 멍 때리고 있었나 봐요, 하 하, 정말 맛있어요.” 그가 팬케이크를 입에 퍼 넣으며 말을 이었다.


  맛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배가 고팠다. 그는 남은 것까지 급하게 먹어치웠다.


  “이제 됐나요, 그럼?” 검볼은 거의 목이 막혔지만, 억지로 마지막 한 입까지 우겨넣었다. 아나이스가 말을 이었다. “그냥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오빠가 원하는 대로 응석받이 해주실 건가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오빠를 너무 몰아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구나, 아나이스.” 니콜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탄했지만, 검볼은 알 수 없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섞여 있었다. “우리 모두 나쁜 일을 겪었고-”


  “그리고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신다고 해서 그 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의 바로 옆에서 니콜이 중얼거렸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검볼은 자신이 헛것을 들은 줄 알았다. “매 번 그래 왔잖아.”


  “뭐라구요?”


  니콜이 한숨을 지었다. “아나이스, 우리가 계속 속상해한다고 세상이 멈추지는 않는단다. 난 여전히 일을 하러 나가야만 하고 너도 여전히 학교에 가야만 해.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하고 난 약간의 평범함이 네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아니요!!!” 검볼은 아나이스가 주먹으로 자기 의자를 내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식탁을 너무도 세게 움켜쥐어 손이 아파왔다. “엄마는 항상 저에게 입 다물고 모두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시죠. 매 번!!! 이럴 때마다!!! 말이에요!!!”


  “제발, 검볼이 미안하다고 했고 진심이 아니었다잖아. 그러니까-” 다윈이 말을 보태었다.


  “아하, 그리고 그게 모든 일들을 다 괜찮게 만들어 준다고? 오빠가 미안해한다고 해서? 오빠는 항상 미안하다고만 하지!!!” 검볼은 다시 눈가가 젖어오기 시작하는 걸 느껴 눈을 꼭 감았다. “참으로 미안해하셔서 자기가 입혔던 상처들은 다 까먹으시고는 다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새로운’ 계획 속으로 뛰어들잖아!”


  “아나이스-”


  “오빠는 어떻게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 난 분명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그 사람이 정말로 우리를 죽일 계획을 세워버릴 수도 있었던 일이야! 이 멍청이를 속이는 건 일도 아니니까!”


  “아나이스, 사-사실은 나 그 사람 누군지 알아, 그-”


  아나이스는 그를 무시했다. “아니면 기계가 고장 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우리가 그 수조 속에서 익사했을 지도 몰라,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고! 법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이 중에 어떤 것도 합법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가 잠시 멈추었고, 이번에는 아무도 그녀의 비난을 막을 사람이 없었다. “오빠는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해요, 엄마! 이런 바보 같은 위험한 장난으로 언젠가 오빠가 스스로 죽길 바라시는 거예요? 사실상 이걸 인정하신 거나 다름없-”


  “알겠어!” 검볼이 일어섰다. 일어설 때의 힘으로 의자가 뒤로 나자빠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알겠다고! 난 진짜 끔찍한 바보 등신이고 다들 날 싫어하잖아! 내가 그렇게 사라지길 바란다면 그냥 나갈게!”


  그는 누굴 밀치고 나왔는지도 몰랐다. 대문도 열어젖히느라 잘 보지 못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다리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을 때까지 도망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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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은 벌컥 열린 대문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데에는 단 1초면 충분했다. 그녀는 어디 내려앉을 지는 신경 쓰지 않고 식탁 너머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생각이 몸을 따라잡기도 전에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괜찮니?’ 그녀가 그에게 물어봤었다. ‘괜찮니?’ 어머니가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모습을 본 아이에게 그녀가 물었다. ‘괜찮니? 그녀가 말했었다. 마치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는 그 말이 통할 거라고 달리 생각해 보았을까?


  바보 같았다.


  ‘우리 모두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지, 니콜.’


  ‘닥쳐.’


  그녀는 곧장 도로로 달려 나갔다. 양 끝을 돌아보는 동안에 그녀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남의 차량 앞 유리에 뻗어 있는 그를 발견한다는 희망고문과 싸우면서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그녀가 알 수라도 있으니, 하지만 거리는 비어 있었다.


  그녀는 달려갔다.


  ‘스스로를 단련하는 걸 소홀히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니콜. 이 모든 일들이 전부 네가 유리벽을 부수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 네가 모자란 탓에 말이야.’


  ‘닥쳐.’


  그녀는 그보다 빨랐지만, 그는 어디든 갔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일단 발걸음을 옮겼고, 그 길이 맞기를 빌었다. 해야 한다면 그녀는 온 동네를 들쑤시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늘 그 아이가 널 망쳐 놓을 거라고 말했지. 그리고 우리가 옳았어. 너도 우리가 언제나 옳다는 걸 알잖아. 그 애가 널 약하게 만들었어, 니콜.’


  ‘닥쳐.’


  그가 어디로 갔을까? 친구네 집에? 페니? 토바이아스? 그들에게 그를 보았는지 물어 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저 시간만 낭비하게 만들 뿐일까? 그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알 길이 없었다.


  ‘자기 아이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나쁜 부모로구나. 우린 너를 이해해, 니콜. 우리는 너 자신보다도 너를 더 잘 알고 있지.’


  ‘닥쳐.’


  만약 그가 강에 빠졌다면? 낭떠러지에 떨어졌다면? 납치범의 함정에 빠졌다면?, 또, 또, 또 -


  ‘네 딸이 옳았어. 넌 아들에게 매를 아꼈고, 이제 넌 절대로 아이를 가지려 하지 않겠지.’


  ‘닥쳐.’


  그녀는 계속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넌 가족의 편을 들어 줘야지.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안 그런가, 니콜?’


  ‘닥쳐.’


  ‘왜? 이게 네가 원했던 일 아닌가?’


  “닥치라고!!!”


  그녀는 주먹을 휘둘렀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곧 나무가 날카롭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눈물을 참고 고개를 들자 자신이 동네 공원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일격에 나무줄기에는 금이 갔다. 다행히도 갈라버리진 않았지만.


  “나무야, 미안해.” 그녀가 멋쩍게 말했다. 나무가 대답할 리는 없었다. 그녀는 손가락 관절들을 문지르며 나무 조각의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자신이 과호흡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열기가 식자 피로감이 단숨에 그녀를 덮쳐왔다. 그녀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호흡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그녀를 보라. 당황한 채로 생각 없이 황급히 달려왔다. 또 다시 말이다. 마치 스스로가 무적인 것처럼, 뭐든지 제 손으로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교훈을 얻을 줄 몰랐다. 바보 같았다.


  그녀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눈물로 변하려는 걸 간신히 참아내며,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다, 이제 그녀는 그를 잃어버린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해야 할 일들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경찰에 연락해 그를 찾는 걸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그는 아마 괜찮을 것이다. 그는 말썽을 피우는 재주가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활로를 찾아 왔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녀는 그저 진정하고 경찰들이 이를 해결해 주길 믿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시금 그녀가 그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던 일과 그의 손목에서 났던 날카로운 우두둑 소리를 기억해냈다. 그녀는 자신의 숨결이 떨리는 걸 느끼고 억지로 진정하려 했다. 진정하고자 했다. 그렇다, 아마도 그는 경찰에 그녀를 신고했을 것이었다. 그렇다, 경찰이 그녀를 구속해 경찰서로 보낼 터였다. 어쩌면 그것이 정의일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그녀가 집행해야만 했던 정의는 검볼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그녀는 발을 디디고 일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


  순전히 운이었다. 바보 같고, 멍청한 운. 그것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저 온 우주가 정말로 그녀의 아들을 찾아 헤매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대낮처럼 선명하게 들판 바로 너머에 앉아 있었으니.


  그녀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녀가 다가오자 그의 귀가 쫑긋거렸지만, 고개를 돌리거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공원 변두리의 숲을 계속해서 쳐다볼 뿐이었다.


  “검볼,”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널 찾으려고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녔단다.”


  그의 귀가 뒤로 홱 젖혀지고 꼬리는 둥글게 말렸다.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니콜이 잠시 멈추었다. “아나이스랑 얘기해 볼게. 걔도 자기가 말한 게 틀렸다는 걸 알 거야. 걔 – 걘 그냥 그 일 때문에 겁먹었을 뿐이야. 그저 잠시 진정할 시간이 필요한 거란다. 아나이스는 아직 널 걱정하고 있어, 검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발. 제발 그냥 집으로 돌아오렴. 다 괜찮을 거야.”


  결국, 그 말에 조롱조의 코웃음과 투덜거림이 돌아왔다. “아뇨. 그럴 리 없어요.”


  “‘아니’, 그럴 거야.” 니콜이 말했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날카로운 말투를 자책했다. 왜 항상 이런 식이어야만 하는 걸까. “우리... 우린 항상 이런 일들에도 극복해 왔잖니, 그렇지?” 그녀가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살짝 움찔했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할게. 약속해.”


  검볼의 꼬리가 어색하게 흔들거렸다. 마치 그녀를 쫓아내려는 듯하면서도 방어적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주먹으로 풀밭을 움켜쥐었고 니콜이 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뭐라고?”


  “제가 싫다고 하면 어쩌실 거냐고요!!!” 이제, 마침내 그가 발을 구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두 눈이 우느라 붉게 물들은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어, 어쩌면 걔가 옳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저는 끔찍하고 바보 같고 배은망덕한 멍청이일지도 모르고, 다들 더 나아질 거예요, 만약 제가-” 정말 사소한 움직임이었지만, 니콜은 보았다. 그가 다시 눈을 내리깔고 말하려던 걸 그만두기 전에 그의 시선이 옆을 향하는 모습을 말이다. 공원을 둘러싼 숲이 그 너머에 있었다.


  모두에게 출입이 금지된 숲.


  괴물들로 가득한 숲.


  생각을 마치기도 전의 그녀의 손이 튀어나가 그의 팔을 틀어쥐었다. 그는 마치 낙인을 찍는 인두에라도 닿은 듯 곧바로 미친 듯이 저항했다. “풀어 줘요!!!” 그가 그녀의 손을 후려치며 비명을 질렀고, 니콜은 엄청난 고통이 손을 가르자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검볼의 팔을 붙잡은 손이 풀렸다. 그가 정말로 그녀를 향해 발톱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녀는 분노가 목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감히’ ‘나’한테 손을 대다니.) 분노가 사라지기 전에 그녀는 생각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그녀는 뭐가 문제였던 걸까.


  검볼이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가지 마.”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한 마디였다.


  그가 멈추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회를 보아 일어났다. 그녀는 손을 뻗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이번에는 붙잡지 않고. 그저.. 그저 그의 어깨에 살짝 손만 얹고자 했다. 그가 진정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의 한 마디가 그녀의 손을 멈추게 했다.


  “정말로 제가 죽길 바라셨어요?”


  그녀는 그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녀도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좀 더 일찍 뭔가 말했어야만 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먼저 꺼내기에는 그녀가 너무 소심했기에 이 일이 터졌다는 것도 알았고, 여전히 가슴이 답답했다. 입에 올리려는 말은 어떤 말이든 간에 매번 스러져 버렸고, 그 대신 역겨움만이 올라올 뿐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저 그 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바보처럼 그를 건드리지도 못하고, 침묵을 깰 때까지 기다릴 뿐 - “아니.” 그녀가 내뱉었다. 그리고 뭔가 더 덧붙여야 될 것만 같아 대충 준비해둔 변명들을 더듬거리며 단번에 말했다. “난-난 그냥 당황했던 거란다, 생각을 안 했다고. 네 목소리가 맨 마지막에 들려서 네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나-난 그 누구의 이름이라도 댈 수 있었어. 진심이 아니었단다, 아가. 너도 알잖 -”


  “제 기분을 맞춰 주려고 거짓말 하실 필요 없어요, 엄마.”


  “거짓말이 아냐!” 그녀가 곧바로 쏘아붙였고, 날선 그 목소리에 다시금 자책했다.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마침내 그녀의 눈을 마주하였고, 이젠 그녀가 그의 시선을 피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녀는 약했으니까, 너무도 약해서 그가 그녀를 정말로 필요로 할 때 그녀는 아들을 마주볼 수 없었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아아, 그러니까 -” 그는 분명 화난 것처럼 보이려는 듯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저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들려올 뿐이었다. “- 생각을 안 하고 계셨던 거네요. 그냥 진심을 내뱉으셨을 뿐이었던 거예요. 고마워요, 엄마. 기분이 훨씬 나아졌네요.”


  “그건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니-”


  “그렇다고 하셨어도 괜찮아요.” 그가 저주하듯 말했다. 니콜은 억지로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시선을 도로 바닥으로 옮겨둔 채였다. “이해해요. 왜 그러시는지 알아요.” 그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전 – 전 버릇없고, 기분 나쁘고,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 - 전 사람들의 일들을 그저 더 나쁘게 만들 뿐이에요. 제가 사라지면 엄마도 더 편해지실 거예요.”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건 ‘절대로’ 사실이 될 수 없어.”


  “엄마도 사실인 거 아시잖아요!” 그가 매섭게 바닥에 발을 구르며 외쳤다. 안 돼, 그녀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었다. 그는 상처받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표출해야 할 지 모를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는 그저...


  니콜이 가냘픈 숨을 내뱉었다. “검볼, 넌 이제 열두 살이야. 네가 말했듯이, 그건 그냥 – 그게 바로 ‘애들이 하는 일’이란다. 아무도 네가 그럴 권리를 막을 순 없-” 그녀의 뇌리에 ‘그들’의 모습이 스쳤고, 그들이 이를 부정하며 까탈스럽게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말을 고쳤다. “아무도 네가 그럴 권리를 막아선 안 돼.”


  검볼은 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나이스는 그런 것 같던데요. 다윈도 그렇구요. 그리고 엄마도 그러신 거 다 알아요. 엄마는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거예요.”


  이 대화는 그렇게 흘러갈 모양이었다. 뭐, 그녀는 그 말을 들을 만 했다.


  그녀가 천천히 앉았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그들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는 듯 했다. 멀리에서 사람 몇 명 정도가 조깅하는 모습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가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던가?”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에겐 어색하게 들렸다. 마치 그녀 자신이 저 멀리에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완벽한 아이였단다. 난 사람들이 시키는 거라면 뭐든 했었지. 난 반항했던 적도 없고,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예에 어긋나는 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단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난 취미도 갖지 않았어. 게임도 하지 않았고, 친구도 만들지 않고, 부모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다. 그건 정말이지-” 그녀는 목구멍에 차오르는 분노를 삼켰다. 지금은 하소연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평정을 유지해야만 했다. 검볼을 위해서.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평탄한 목소리를 내려 애썼다. “그건... 사람이 사는 방법이 아니었단다.”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난... 가장 끔찍한 건 내가 얼마나 불쌍했는가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장 끔찍한 건 내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야. 난 다른 삶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단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니? 아이를 울타리 속에 가두고 키우게 되면, 울타리가 그 아이의 세상 전부가 된단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스스로가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검볼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방울처럼 커다란 눈을 하고는 완전히 이야기에 푹 빠진 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으셨을 줄은 몰랐어요.” 그가 우물거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토닥였고, 이번에는 그도 거부하지 않았다. “난 네 삶이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아, 검볼. 난 네가 네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 말은, 네가 가끔 실수를 하고,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그것들이 날 너무 힘들게 만들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가 몸을 수그리는 동안 그녀가 말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성장의 과정일 뿐이지. 넌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고 있는 거란다. 그리고 난 그걸 세상을 위한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 않구나.”


  검볼은 다시 풀밭을 쳐다보았지만, 얼굴은 상당히 냉정해 보였다. “그건 사실이 아녜요.” 그는 웅얼거렸지만, 억지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엄마는... 절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아도 되길 바라신다고 말씀하셨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여전히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그 모습을 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몸을 추스르고, 그의 어깨를 꼭 쥐고는 그의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검볼,”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록 두기 전에 내가 먼저 내 목숨을 바칠 거란다. 처음에 말했었잖니, 그리고 난 진심이었단다.”


  몇 초간의 정적 끝에, 그녀는 검볼의 눈가가 젖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떨려오기 시작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자 니콜은 미소 지으며 이를 받아 주었고, 그는 그녀 품에 안기었다. 그 동안 참아왔던 모든 고통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그녀가 무릎을 꿇고 그를 팔로 감싸 안은 동안 그는 계속해서 울었다.


  “괜찮아, 아가.” 그녀가 그의 등을 부드러이 쓰다듬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괜찮을 거야-”


  “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예요?!” 그가 그녀의 옷깃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그녀는 그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전 그런 말 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전 절대로 엄마가, 아, 아, 아-” 그의 말은 다시 알아듣기 어려운 흐느낌으로 변하며 멈추었다.


  “쉬이이잇.” 니콜이 다시 다독였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여기.”


  보기 흉하고, 비참한 울음이었지만, 그녀는 검볼의 감정이 폭발하는 일에 익숙했었고, 그가 감정을 표출해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도 이 곳이 그러기에 썩 좋은 곳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냉정하고 불편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공원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가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등에 매섭게 꽂혀왔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에게서 잠시라도 눈을 떼는 것은 그를 배신하는 행동이 될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차분히 그를 꼭 안아 주었다.


  그들은 잠시 더 그런 채로 있었다.


  “전... 저는 엄마가 정말로 그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어요.” 검볼이 훌쩍이고는, 그녀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여전히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그러니까,” 그가 재빨리 덧붙였다.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말씀하셨던 건, 분명 여-영화에서 언제나 부모들이 꺼내는 대사죠. 전 그냥, 엄마는 정말 강하시니까 다 때려 부숴버리신 다음에 버튼을 발견하시고 모든 일들이 다 잘 풀릴 줄 알았어요. 전...”


  “괜찮아.” 그녀가 다시 말했다.


  “아-아니요, 이건...” 검볼은 고개를 저었다. 눈가에 다시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말을 하셨을 때, 전 그저... 전 엄마가 정말로... 정말로...” 그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져 흐느낌으로 변했고, 그는 다시 그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무 속상해서 저 자신이 이미 죽어버린 것만 같았어요. 정말 미안해요, 엄마.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녀는 그가 다시 울기 시작할까봐 걱정했지만, 그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 품에서 떨어져 몇 번 훌쩍이기만 했다. 그러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안 괜찮아요. 전...” 그는 덜덜 떨며 숨을 들이키고는 불쑥 말을 내뱉었다. “엄마, 롭이 말했던 건...”


  그게 그 사람의 이름이었을까? “괜찮단다, 아가.”


  그가 놀랄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괘-괜찮지 않아요. 제 생각에는... 중요한 일이라구요...”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무슨 말을 할 지 고민하는 중이리라. 니콜은 침착하게 기다렸다. “저... 전 이기적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이 바로 떨려왔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저, 저는 이기적이었지만 전 그저 – 그러니까, 저만을 위해 벌인 일이 아니었어요, 그건, 그건 그냥...”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우리, 우리는...” 그가 말을 흐리다 다시 이어갔다. “가끔 저는 우리가 서로 말을 꺼낼 때마다 싸우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했었고 엄마나 다윈이나 아나이스가 화를 내게 되고 또...” 그는 숨을 들이키고는 더 빠르게 말들을 내뱉었다. “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들 계속 화난 채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저도 모르겠어요. 언제부턴가 그냥 늘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게 됐어요. 평생 그렇게 되는 건 싫었어요.” 그는 공기를 꿀꺽 삼키고는 괜찮아질 때까지 계속해서 심호흡을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전 이 상황을 ‘바꾸고’ 싶었어요.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일을 벌이는 거였죠. 엄마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 모두 행복해질 거라고 말이에요. 저도 알아요. ‘멍청한’ 생각인 거. 지금 말하려니까 ‘진짜’ 멍청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전 그냥, 전 그냥, 그게 제가 바랬던 모든 일이었어요.”


  니콜은 다시 한 번 ‘괜찮아,’라고 말하려 입을 뗐지만, 그녀의 머리가 제 때에 그녀의 입을 닫았다. “...그러면 내가 널 멈춰야 할 사람이겠구나.” 그녀는 이 말로 대신했다.


  그녀는 다리와 가슴에 남은 열기, 무릎의 뻣뻣함과 그녀가 수면 부족을 이겨내려는 만큼 피로감도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걸 격렬하게 느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한숨을 내뱉자, 그녀는 스스로가 너무 약해진 것을 느꼈다. “넌 내가 무슨... 슈퍼히어로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구나. 언제나 널 위해 곁에 있어 주는 사람, 언제나 옳은 일을 하는 사람. 모두들 자기 부모가 그렇길 바라지. 나도 너를 위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난...” 그녀는 숨이 턱 막혀오는 걸 애써 억눌렀다. “...난 그렇지 않아. 사실은 말이지, 난... 그냥 사람이란다. 그냥... 멍청한 사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수를 저지르고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사람이지. 나를 영웅처럼 여겨서는 안 돼. 미안하구나, 검볼.”


  그가 주먹을 움켜쥐고는 격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어째서 사과하시는 거예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친 사고라구요! 모두 제 탓이란 말이에요! 전... 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가 훌쩍였다. 다시 울 것만 같았다. 니콜은 그저 손으로 그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는 그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넌 내 아들이잖니, 그리고 난 널 사랑한단다.”


  정말로 놀란 듯한 그의 표정이 니콜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지만, 곧 그의 입 꼬리가 올라가 마침내 연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말이 여태까지 그가 바래왔던 것이었을까?


  검볼이 훌쩍이고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정말 화 안 나셨어요?” 그가 흐느끼듯 말했다. 목소리에 실낱같은 희망이 옅게 스며들었다.


  “그럼.” 그녀가 곧바로 정정했다.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짓 하면 안 된다-”


  “알겠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더 꾸짖을 거야. 그러니까,” 그녀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쌤쌤인 걸로 치자꾸나, 알겠지?”


  검볼은 여태까지 그녀가 봐왔던 모습 중에 가장 진지한 얼굴로,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그 곳에 몇 분 동안 조금 더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검볼이 그녀의 팔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제 놓아 주셔도 돼요, 엄마.”


  “앗!” 그녀가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었다. “미안, 아들.”


  팔이 그녀의 뜻을 따르기까지는 몇 초 정도 걸렸다. 그녀의 동작은 느렸다. 잘못하면 그를 영영 잃을까 두려운 듯이, 극도로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상인 양 말이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일이었다. 사람은 사물이 아니니까.


  검볼은 옷을 털고는 주변을 어색하게 돌아보았다. 니콜이 그를 잠시 쳐다보다 말했다. “우리가 최고의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해서 미안해, 검볼.”


  “괜찮아요.”


  그녀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이제야 그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았다. “아가, 만약 네가 속상하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괜찮은 게 아니란다.”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나도 문제가 있는 걸 알아. 나도 이성을... 잃을 때가 있다는 걸 알지...”


  그 소년의 팔뚝이 부러지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고, 그녀가 그를 때렸을 때 그의 얼굴이 변형되는 모습이 보여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돌려야만 했다. 아마 검볼도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 그녀는 그의 눈 속에서 뭔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이 생각을 그만두고 말을 이어가야만 했 -


...아니다. 그 소심함이 맨 처음에 이 사단을 일으켰던 원흉이 아니었던가.


  “네 친구를... 다치게 만들어서 미안하구나.”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검볼이 움찔했다. 젠장,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괜찮아요. 엄만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셨으니까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었어. 그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난...” 그녀가 한숨을 짓고는 손가락으로 콧등을 쥐었다. “난 더 잘 해야 해. 난 더 나아져야 해, 난 점점 나아져 왔지만, 아직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알아.” 그녀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난 절대로 네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아, 검볼.”


  검볼은 경직돼 보였다. 마치 대답할 줄 모르는 것처럼. “저... 저도 더 나아져야 돼요. 그건 알아요.” 그가 우물거렸다. “이제 바보 같은 짓 안 할게요. 그리고 책임감도 더 가질 거구요. 그리고, 그리고, 집안일도 도울게요! 약속해요!”


  그는 그 약속을 깰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한 달 안에 그는 이 일을 모두 잊고선 다시 그 자신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니콜이 일어섰다. “집으로 가자.” 그녀가 말했다. 그리곤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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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가놈]


중간에 자동기술법을 사용했는데요, 대문자가 없는 한글에서 어떻게 하면 이들 문장을 적절하게 옮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실험적으로 다윈의 대사 몇 군데에 사용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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